다연은 감자 하나를 반으로 쪼갰다. 하나는 다시 반으로 나누어 잡고 나박썰기를 해서 물이 반쯤 찬 뚝배기에 넣었다. 나머지 하나는 얇게 썰어 눕히고 다시 채썰기를 했다. 기름이 둘러진 프라이팬에 채 썰기 된 감자가 ‘치이익’하면서 볶아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호박 반쪽을 짚어들고 이번에도 반으로 나누고 그중 하나는 나박썰기를 해서 다시 뚝배기 안으로 던져 넣었다. 나머지 반은 다시 채썰기 되어서 방금 감자를 볶아낸 프라이팬에 볶아냈다. 다연은 급하게 생각난 듯 냉장고에서 두부 1/2 조각을 꺼내어 다시 반으로 갈랐다. 반은 뚝배기 행이고 나머지 반은 호박을 볶아낸 프라이팬을 키친타월로 닦아내고 노릇노릇 구웠다.'“아유! 혼자 먹을 아침상을 뭐 그렇게 거하게 차려?”'옆옆방 배불뚝이 새댁이 국을 더 떠서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다연은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머니가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잘 챙겨먹으라고 그랬었다. 할머니가 아프고 다연이 처음으로 온전한 밥상을 차렸던 건 벌써 5년도 전의 이야기였다. 중학생이던 다연이 한때는 바로 옆방에 살던 아주머니에게 고등어조림을 배웠던 날부터 쭉이였다. 다연은 그 작은 쪽방에서 고단한 삶을 살다가 가 버린 불쌍한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3일 전쯤 국회로 가겠다는 아저씨들이 동네를 돌면서 쌀 포대를 놓고 돌아다녔고 하얀 돈 봉투에 지폐도 몇 장씩 들어 있었다. 기호는 몇 번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공돈으로 할머니에게 쇠고기 불고기를 해 드릴지 낡아 버린 카디건을 새로 바꿔 드릴지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불고기를 오물거리다가 끝내 넘기지 못하고 뱉어 내시면서도 ‘맛있다’를 연신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할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난다.’'쪽방문을 열고 한때는 할머니와 같이 밥을 먹던 조그만 밥상을 놓았다. 그리고 미리 해둔 밥을 푸기 위해 쪼그려 앉아 바닥의 냄비 뚜껑을 열었다. 고슬고슬 새로 지은 밥 냄새를 맡으며 밥을 한 공기 퍼서 밥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삼색슬리퍼를 끌고 상을 밀며 디딤돌을 딛고 들어갔다. 문을 닫으며 출근을 위해 서둘러 식사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잘 먹겠습니다!”'출근을 위해 언덕을 내려온 그녀는 버스를 타고 U마트라는 안내방송이 들리기 전에 일어서서 출입문을 향해 움직였고 문이 열리자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U마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2년 전 그날처럼 출력된 품목을 보고 장을 보는 것이었다. 2년 전과 달라진 것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더 자랐다는 것과 오늘이 이 부서에서의 마지막 근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U마트에 계약직으로 입사를 했었다. 또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근무를 했지만 그녀에겐 그 돈은 월급이고 생활비였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쪽 다리를 절었고 그것은 일반적인 직장은 그녀를 원치 않는다는 뜻이었다. '태어 날 때부터 다리를 전 건 아니라고 들었다. 기억에도 없는 엄마와의 산책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엄마는 그 사고로 돌아가셨고 다연은 장애인이 되었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단둘이 이 고단한 삶을 살아내야 했다. 아빠는 어디 있을까? 다연도 그게 늘 궁금했다. 기억 속에 희미한 아빠는 외할머니에게 다연을 데려다주고 열흘이 지나면 데리러 온다고 말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열 밤’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는 걸 알았지만 방구석 벽지에 1부터 10까지 다시 써 가던 마지막 날 아빠가 손에 쥐어 줬던 곰돌이를 버렸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유일한 가족이던 외할머니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외삼촌과 외숙모가 오셔서 장례를 치르시고 돌아가셨다. 다연이 그저 얼굴만 아는 이모의 연락을 받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더 이상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이 생일이었다. '“U마트로 출근 한 게 벌써 2년이 넘었네. 할머니랑 새로 생긴 U마트 구경할 땐 여기서 일할 줄 몰랐는데…….”'꽃다발 하나 없이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다연은 면접을 보기 위해 U마트엘 왔었다. 큰 회사는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하는 규정이 있다고 말해 준 복지사님과 함께였다. 다연이 맡은 업무는 고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품을 담아 배송기사에게 넘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첫 월급을 받을 무렵 정확하게 이틀에 한 번 같은 품목을 구입하는 특이한 손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재미있는 손님은 매주 월, 수, 금 마트의 배송 마지막 시간인 밤 10시에 물건을 받겠다고 주문을 해왔었다. 그 주문지를 보면서 이 정도 물건이면 그냥 나와서 사거나 일주일치를 모아서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꼬박꼬박 배송비와 구매 대행수수료를 지불하는 이 사람이 궁금해지기도 했었다. 가끔 반복되는 그의 물품구입에 처음 보는 물건이 추가 되었다. 그렇지만 곧 그것도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의 식단까지 알게 되었다. 석 달에 한 번 24롤 Y사에서 나온 3겹 물에 잘 녹는 화장지를 사용하고 한 달에 한 번 30개들이 B사의 일회용 면도기를 같은 회사 치약 1통과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 식기세척기용 주방세제가 들어가는데 반드시 Z사의 레몬향으로 700ml 리필이었다. 지난 번 주문한 식도는 이유 없이 눈에 익은 C사의 백합도였는데 보나마나 이건 아마 일 년 전에 똑같은 구매가 있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