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한성중공업 창립기념 행사장은 한성그룹 계열사의 주요 인사들을 비롯하여 많은 내빈들로 북적였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붙들려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던 우진은 행사장 테라스로 나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우진은 행사장에 오기 직전 전해들은, 그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떠올렸다. 그간의 나른한 피로가 몰려온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을 만큼 성취감에 벅차 오른 그가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와 갖가지 아이디어에 심취해 있을 무렵이었다.'' “정말이야? 강서해를 찼다고? 네가?”'' “아, 그렇다니까!”'' 두 남자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사색의 시간을 방해하자 우진은 만면에 불쾌한 표정을 그었다.'' 소음 공해가 따로 없군. 어딜 가나 머리 텅텅 빈 인간들이 있다니까. 그렇게 할 얘기가 없나?'' 뒤돌아 그들이 누군지 확인하는 수고를 할 것도 없이 십중팔구 흥청망청 무대책 재벌자제들일 터였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여자는 그들만큼이나 구제불능일 한성중공업 대표이사 강인호의 여식, 강서해였다. 세기를 아우르고도 남을 여성 카사노바로 소문이 자자한 여자.'' 어떻게 강 사장님 같은 아버지 밑에 그런 딸이……. 쯧쯧.'' 우진은 저도 모르는 사이 혀를 차고 있었다.'' “걔 콧대 엄청 높다던데 어떻게 꼬셨냐?”'' “엄청 높긴 높더라만, 한 번 자고 나니까 바로 엎어지던걸?”'' “잤다고? 진짜?”'' “자식이, 속고만 살았냐?”'' “걔랑 연애해 보려고 부산까지 줄을 섰다던데, 왜 찼어?”'' “계집애, 버르장머리가 없더라고. 완전 안하무인에 성격도 지랄같더라니까!”'' 듣다못해 두 남자에게 눈을 돌린 우진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대표 망나니로 인정받고 있는 선호그룹 회장 아들 조영진과 그에 못지 않은 날라리로 명성이 자자한 일진제약 사장 아들 김현수였다. '' 버르장머리없고, 안하무인에 지랄 같은 성격? 완전 지들 얘기네?'' 우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희들 앞가림이나 하면서 그러면 최소한 꼴사납진 않으련만, 두 철딱서니는 주제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는 듯 했다.'' “자식! 찰 땐 차더라도 나한테 소개나 시켜주지 그랬어?”'' “그런 계집앤, 안 만나는 게 네 인생에 축복일 거다. 제 아버지 백 믿고 얼마나 시건방진지, 말도 못해. 장난 아니더라니까.”'' “그 정도야? 어째 소문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제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줄도 모르고 줄기차게 떠들어대는 그들이 우진의 눈엔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강인호 사장, 그 꼬장꼬장한 양반이 자신의 외동딸을 둘러싼 추문을 알고 있을지, 갑자기 미치도록 궁금해졌다.'' 강서해 그 여자,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여자길래 저런 얘길 달고 다녀? 강 사장님 자식교육이 영 꽝 인가 보지?'' 우진은 연거푸 혀를 차며 테라스에서 나왔다.''''''1. 상품개발팀장 이우진 VS 인간 이우진'''''' 한성건설 상품개발팀장 이우진은 팀원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인천 국제 공항 로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목적한 바 그 이상을 달성한 출장이었기에 팀원들은 금방이라도 브라보를 외칠 듯 들떠있었지만 우진은 예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그에게선 언제 어디서나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니! 이 팀장 아닌가!”'' 자신을 부르는 호쾌한 목소리에 우진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그의 경영감각을 따를 사람이 없다는 중공업계의 귀재, 한성그룹과 계열사를 통틀어 가장 엄하기로 소문난 오너, 한성중공업 대표이사 강인호였다. '' “사장님!”'' 우진은 황송한 분을 만나 영광이라는 표정을 짓지도, 나 죽었소하며 납작 엎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어른을 대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젊은 놈이 오만하다 손가락질 받을 지도 모를 사무적인 태도였지만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으며, 강 사장 또한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중국 갔다더니 이제 오는 건가?”'' “예.”'' “그래, 갔던 일은?”'' “예, 마무리 짓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 허허. 자네 사장 좋아 죽는 꼴을 또 보게 생겼구먼?”'' “아, 예…….”'' 우진은 말끝을 흐리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 “사장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회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해서요.”'' 출장 다녀오는 길이니 조금 여유 있게 움직여도 좋으련만, 시간 엄수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우진에게는 씨도 안 먹힐 얘기였다.'' 우진의 말에 잠시 화난 눈빛이던 강인호 사장이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팀장! 언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예, 사장님.”'' “다음 주 토요일 어떤가?”'' “예? 예, 사장님.”'' “토요일 7시에 자네 회사로 차 보내겠네.”'' “…… 예, 사장님.”'' 강인호 사장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는 우진에게서 기어이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껏 내 앞에서 저렇게 뻣뻣이 고개 쳐드는 놈이 없었는데……. 녀석, 볼수록 탐이 난단 말이야.'' 뒷짐지고 돌아서는 강인호 사장의 얼굴에 뭔가 단단히 결심한 표정이 어렸다. '' 우진은 강인호 사장을 흘깃 돌아보았다. 그는 마주칠 때마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강인호 사장이 부담스러웠다. 다른 사람들한텐 서슬 퍼런 칼처럼 대하는 사람이 왜 유독 자신에게만 관대한 지, 의문 그 자체였다.'''''' 강성호 사장 이하 임원진은 상품개발팀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겠다고 보고 했을 때 내심 마뜩찮아했었다. 그러나 상품개발팀의 중국 출장 결과보고 후,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우리 한성이 중국에 진출한다는 건가?”'' “네, 사장님.”'' 국내 부동산시장 불황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한성건설의 아파트는 매번 100% 분양을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업계 최고 평당 분양가에 평균 1억원을 웃도는 분양권 프리미엄까지 이루어냈다. 이러한 성공 뒤엔 최고급 마감재와 특별한 공간미학을 채용한 브랜드 아파트, ‘예나르’를 기획한 이우진 상품개발팀장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국내 시장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주장하던 그가 기어이 ‘예나르’ 브랜드 중국 수출을 성사시키고 돌아온 것이다. '' “수고했네, 이 팀장! 정말 수고했어!”'' 강성호 사장은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우진을 스카우트해왔던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재차 확인했다.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순간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냉혹한 기획자. 재작년, 큰형인 한성그룹 사장으로부터 기획실 이우진 대리의 역량에 대한 칭찬을 듣고 도박하듯 그를 데려와 상품개발팀을 신설한 것이 오늘의 성과를 가져온 셈이었다.'' “오늘 같은 날 회식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각 부서에 저녁 약속 모두 취소하도록 지시하세요.”'' 우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임원진들을 지나쳐 회의실을 나왔다. 박수하며 좋아하던 상품개발팀원들도 서로 눈짓을 하다 우진의 뒤를 따랐다.'' 우진은 팀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출장기간 동안 밀린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회식 전까지 출장 성과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쉴 줄 알았던 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은 이런 때도 웃질 않네?”'' “우리 팀장이 감정 드러내는 거 봤어? 포커페이스 아냐, 포커페이스!”'' “그러니 저 나이에 저 자리에 앉아있지.”'' 한숨 섞인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팀원 중 누구도 팀장은 일하거나 말거나 우리는 자축하자며 나서지 않았다.'' 이우진 팀장의 딱딱한 표정과 적은 말수는 상품개발팀원들로부터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운, 나이 어린 상관을 더욱 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원성을 자아냈다. 물론 이런 부담과 원성이 우진의 귀에 들어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쾅쾅쾅.'' 기진은 현관문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소리에 놀라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편을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야밤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으로 보아 세상살이가 너무 반듯해 탈인 그녀의 남편일 리는 없었다. 같은 과 노교수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와도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누, 누구세요?”'' 동이나 호수를 혼동한 성격 고약한 사람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아파트 자체를 잘 못 알고 들이닥친 취객일 지도…….'' 기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거실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들었다. 더듬더듬 폴더를 열고 0번을 길게 눌러 귀에 가져다댔다. 신호가 가는 소리를 들으며 기진은 현관문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세요!”'' “나야! 빨리 문 좀 열어, 얼어죽겠어!”'' 남편의 음성보다 익숙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이기진의 남동생, 짜증대왕 이우진이었다. '' “우진이니?”'' 기진은 그제야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뺄 수 있었다. 그녀가 현관문을 막 열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지하철 내렸어. 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지금 우진이 왔어. 나 혼자 감당 못하니까 최대한 빨리 들어와.”'' -벌써? 그래, 알았어.'' 아직도 누나를 자신의 밥, 아니 간식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우진이 다시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나! 빨리 열라니까 뭐 해!”'' 기진은 까불고 있다며 핀잔을 주려했다. 그러나 파랗게 질린 동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 약한 누나의 이름으로 치받은 짜증을 가라앉혔다. 우진은 이까지 부딪히며 덜덜 떨고 있었다.''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잠 귀 어두운 누나 둔 덕분에 차가운 아파트 계단에 1시간동안 앉아 있어서 그렇다, 왜!”'' “1시간?”'' “그래, 1시간!”'' 기진은 우진의 코트를 벗기고 방에서 두툼한 이불을 가져다 감싸주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구는 우진이지만 이 엄동설한에 차가운 계단에서 1시간을 앉아 있었으니……, 저리 화가 날 만도 했다.'' 기진이 대령한 유자차를 마시고 조금 몸이 풀린 우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제 이마에 손을 대고 감기 걸리면 어쩌느냐고 걱정하고 있는 누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벨을 눌러도, 전화를 걸어도 도통 소식이 있어야 말이지. 앞집 사람, 아랫집 사람 기웃거리고 아주 가관이었다니까. 매형 덕 좀 볼까 했더니, 없는 번호래요. 휴대폰 번호 바꿨으면 말을 해 줘야 할 꺼 아냐, 말을! 이거 봐, 누나한테 전화하느라 그 새 휴대폰 배터리 떨어진 거!”'' 우진은 폴더 창이 꺼진 휴대폰을 코앞에 들이밀며 누나의 어두운 잠귀를 탓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 오밤중에 그렇게 문을 두드리면 어떻게 해…….”'' 기진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훈계할 수밖에 없음이 원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렇잖아도 마지막으로 시도해보고 실패하면 근처 여관에라도 가려고 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우진의 고함에 귀가 다 멍해질 즈음 기진의 귀에 구원의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지현씨?”'' “어, 나야.”'' 번개처럼 달려나가는 기진을 곁눈으로 흘기며 우진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불만에 찬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기진이 가져다 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현관을 들어서는 매형을 노려보았다.'' “우진이 처남! 이번 주말에 귀국한다고 했었잖아?”'' 우진의 상태를 직감한 지현이 눈웃음을 지으며 코트를 기진에게 건넸다. 기진은 우진의 눈치를 살피다 방으로 들어갔다.'' “매형은 귀가가 왜 이렇게 늦어?”'' “오늘 졸업생들이 술 사달라고 찾아왔지 뭐야. 취한 애들 몇 명 택시 태워 보내고 보니 11시더라고.”'' “어떻게 된 거야?”'' 지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를 억누르고 있음이 분명한 우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집에 갔더니 생전 처음 보는 분들이 반갑게 날 맞으시던데?”'' “어머님, 아버님 어제 거창으로 내려가셨어.”'' “거창으로? 그럼 집을 파시고 이사가셨다는 거야?”'' 우진은 황당함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지현을 올려다보았다. 폭발하기 직전의 남동생을 지켜보던 기진이 남편의 팔을 붙잡고 우진의 앞에 나란히 앉았다.'' “너 출장 가기 전에 엄마가 집 내놓을까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아니 어떻게 그럴까 했던 게 이 주도 안 돼 그랬어가 돼? 나 얼마 전에 아버지랑 통화했을 때도 아무 말씀 없으셨단 말야!”'' “급하게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서 더 지체할 거 없이 내려가자 하신 거야. 정신 없으셔서 너한테는 이삿짐 정리되는 데로 전화하시려고 하셨는데, 네가 예정보다 일찍 귀국한 거구.”'' “말도 안 돼!”'' 할 말을 잃은 우진이 허탈한 얼굴로 소파에 기댔다.'' “내 짐은?”'' “당연히 여기 있지. 서재에 놔 뒀어. 차는 주차장에 있고.”'' “그래도 아들 짐 따로 싸 놓는 건 안 잊으셨었나보네.”'' 기진은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우진을 째려보았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 재수 없다. 저, 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는 것 좀 봐!'' 그녀는 버럭 화내던 와중에도 온갖 폼을 다 잡는 동생을 향해 혀를 내둘렀다. '' “우진아, 우리 같이 살자.”'' 지현이 던진 한마디에 기진과 우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짜증 섞인 외침으로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었다.'' “싫어!”'' “뭐라구!”'' 나이를 망각하고 티격태격하는 남매를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젓던 지현이 먼저 우진에게 물었다.'' “왜 싫은데?”'' “내가 나 살 집 하나 못 구할 정도야?”'' “누가 너 능력 없다고 얹혀 살래?”'' “싫어, 무조건!”'' “혼자 사는 게 어떤 건지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하나밖에 없는 처남더러 혼자 살라고 그럴 수 있겠어?”'' “내 나이가 몇 인데 혼자 못 살아? 낼모레면 서른하고도 하나야.”'' “이우진!”'' “형! 우리 누나랑 다시 살다니, 내가 미쳤어?”'' 두 남자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기진이 정색하는 우진에게서 이불을 걷어냈다.'' “야, 너 말 다했어? 나도 너랑 살기 싫어. 야, 너 지금 나가!”'' “추워, 이리 내!”'' 우진이 이불을 홱 잡아끄는 바람에 기진의 몸이 기우뚱했다. 순간 사색이 된 지현이 기진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녀는 거꾸러졌을 것이다. '' 과연, 이 유치한 대화와 행동이 서른을 넘긴 누나와 남동생에게서 나올법한 것들일까, 한숨을 내쉬는 지현을 뒤로하고 기진은 다시 동생에게 달려들었다. '' “엄마, 아빠는 네 능력 대단한 걸 모르셨는지 집 구하라고 네 통장에 돈까지 입금하셨어. 내일 은행 문 여는 데로 찾아다 계약하렴. 그러려면 어서 나가서 집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니?”'' “지금이 몇 신데 나가래?”'' “네 말마따나 네 나이가 몇인데 시간을 따져? 일단 나가! 나가서 근처 여관을 가든 능력껏 호텔을 가든, 아니면 네 여친들한테 가든!”'' “이 집이 누나 꺼야? 왜 사람을 나가라 마라야.”'' 기진이 드디어 우진의 덜미를 잡은 듯 씩 웃었다.'' “너 말 한 번 잘했다. 이 아파트 분양 받을 때 내 명의로 해서 법적으론 내 소유야. 그러니까 나가!”'' “누나, 잠깐만!”'' 깜짝 놀란 우진이 치열한 말싸움 가운데 ‘타임’을 걸었다. 우진은 지현의 어깨를 붙들고 주문처럼 설마, 설마를 속으로 삼켰다.'' “형! 누나 명의로 했다니, 정말이야?”'' “어. 누나가 그래달라고 하길래.”'' 그럴 리가 있겠냐고 말해주길 바랐으나, 지현은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니 나가시죠, 이우진씨?”'' 어이없는 우진의 눈에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소리치는 누나의 뒤에 서 있던 지현이 그만 하고 서재로 들어가라는 사인이 들어왔다.'' “형, 나 오늘 서재에서 신세 좀 진다.”'' 우진은 누나를 길길이 뛰게 해 매형 눈밖에 나서 좋을 거 하나도 없겠다 싶었다. 그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서재에 들어가 버렸다.'' “야, 너 어딜 들어가! 안 나와!”'' 지현은 우진을 뒤쫓으려는 기진을 붙잡고 뒤에서 껴안았다. 기진은 지현의 손길을 뿌리치려 몸부림쳤다.'' “어유, 좀 놔 봐!”'' “이기진씨, 남동생과 싸우는 것 땜에 뼈빠지게 일하고 귀가한 남편을 이렇게 내팽개쳐둬도 되는 거야?”'' “악랄한 처남한테 밀리고 있는 부인을 내버려둔 게 누군데?”'' “잘 못 했어. 우진이 다음에 또 저러면 내가 눈물 쏙 빠지도록 혼내줄게.” '' 지현은 몸을 감싼 팔을 풀고 흘긴 눈으로 돌아보는 아내를 다시 꼭 안고 드러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기진은 나이답지 않은 모습투성이였다. 남동생과 저차원적인 말다툼을 주고받는 웃지 못할 상황은 빙산의 일각의 불과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절로 혀를 차게 만들고, 그리도 못마땅하게 여겨졌던 그녀의 그런 점마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아직도 남들 다하는 계산적인 생각을 요만큼도 하지 못하는 아내였다. 아내의 손을 꼭 붙들고 죽는 그 날까지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해갈 뿐이었다.'' “우리 그만 들어가자.”'' “뭐야, 왜 이래.”'' “뭐, 어때.”'' 기진은 입술로 자신의 목줄기를 쓸며 꼭 껴안는 지현을 밀어내려다 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처남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는데, 어떻다니? 거기 거실 창 커튼은 폼으로 달아 놨어? 앞 동 사람들 다 보겠네! 그리고 분위기 잡더라도 씻고 좀 해라, 응!”'' 샤워하러 나오던 우진이 못 볼 걸 본 얼굴로 서있었다.'' “형 먼저 씻어. 한 30분이면 되지?”'' 그리고 닭살부부에게 두 손 다 들었다며 서재문을 부서져라 닫고 들어가 버렸다.'' “누나 때문에 지현형 완전 사람 버렸어. 유치하게스리.”'' 우진은 밖에 다 들리도록 씩씩댔다.'' “야! 이우진! 너 말 다했어!”'' 지현은 우진의 말에 다시 불타오른 기진을 다독여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야 했다. 그는 모처럼 잡힌 무드를 망쳐버린 처남에게 두 번 다시 같이 살자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2. 이런 여자가 있었다니''3. 소문 속의 여자, 강서해를 만나다. 그런데''4. 우째 이런 일이''5. 이 만큼 꼬일 수도 있다''6. 콩깍지''7. 오해의 뒤안''8. 고백하다''9. 협박과 애원 사이 1''10. 협박과 애원 사이 2''11. 밀고 당기기. 일명, 고무줄 놀이''12. 한성건설 상품개발팀장의 실체''13.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14. 그만이 할 수 있는 이벤트''15. 두 사람''16. 눈물겨운 외조''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