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케이의 목소리가 나를 찾는다.'“하유경! 준비 다 됐어?”'나는 약 2초 정도 우물거리다 겨우 대답을 했다. 성질 까칠한 케이는 늦게 대답하면 바로 큰소리가 나왔다.'“지금 나가!”'대답을 하고서도 나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벽에 걸린 공주풍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7월도 중순에 접어들고 장마는 이미 자취를 감추며 불타는 태양에게 자리를 내줄 무렵이었다. 비가 오는 날보다 더위에 허덕이는 날이 더 많은 막바지 장마철에 나는 드디어 케이의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비서 일 같은 거 물리학도로서 금방 배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각오를 다졌다. 회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어 월급만이라도 알아내려 했지만, 케이는 사장 주제에 잘 모른다고 했다. 출근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숨을 쉬며 딱딱한 얼굴을 했기에 그 뒤로 더 물어보지 않았다.'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거실로 나갔다. 조그만 탁상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케이는 사장이라 시간이 자유롭지만 오늘은 새 직원과 함께 출근하느라 일찍 일어나 서두르고 있었다.'“뭐하고 있냐? 시간 엄수하는 게 깐깐한 이 실장한테 안 찍히는…….”'거실 가운데 서서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잔소리를 하던 케이가 뒤통수라도 맞은 듯 얼빠진 얼굴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나는 사놓고 쭉 옷장에 넣어 둔 바다 빛 치마정장을 출근 기념으로 꺼내 입었다. 그 옷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며칠 고민해 봐도 새로 옷을 사기는 싫었다. 돈도 아까웠고 여자 옷을 더 사다놓는 게 싫었다. 혹시라도 생각보다 자유로운 회사라 청바지를 입어도 일할 수 있다면 집에 있는 옷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어쨌든 서늘한 얼굴로 찌르듯 쳐다보는 케이의 시선에 목욕 후 벌거벗고 뛰어다닐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어색함 때문에 목소리가 조금 젖었다.'“아, 저어…… 옷이 이것밖에 없어서…… 청바지로도 괜찮은 회사라면 좋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첫 출근이라……. 많이 이상하지?”'“아니, 예뻐.”'케이는 짙은 그늘이 깔린 눈으로 한숨처럼 대답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나에게는 간이 녹을 정도로 달콤하게 들렸다. 달콤? 뭐가 달콤이냐! 케이가 사탕이냐, 초콜릿이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나이에 그것도 남자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는 게 상식 밖이라는 거다! '요 며칠 내 상태는 갈수록 이상해졌다. 케이를 보면 수시로 심장이 떨렸고, 넋 놓고 보기 일쑤에다가 풍기는 체취와 평상시 같은 목소리조차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케이가 곁에 다가왔을 때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가 설거지하다 그릇을 깨뜨린 적도 있었다. '확실히 그때 이후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 의지로 키스를 받아들였을 때.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심으로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그날 이후부터 나는 확실하게 자각하기 시작했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쑥스럽게 바닥만 내려다보며 턱을 긁고 있자 케이의 한숨소리가 짧게 들려왔다. '“다 좋은데 그 머리 좀 어떻게 하자. 이리 와.”'케이는 뭐라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내 손목을 끌고 옷 방으로 갔다. '“넌 여자라고. 몇 번을 다시 말하게 해? 머리도 좀 똑바로 빗고, 하루에 한 번은 샤워하고, 세수도 기본 두 번은 해야 한단 말이다. 화장도…… 그러고 보니 화장은 했네? 웬일이냐?”'“응.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