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쾅!'삽시간에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자동차 추돌 사고였다. 거리는 부상자들의 신음들이 잠식했다. 처참하게 피를 흘리는 중상자들을 하나 둘 싣고 응급차들이 요란하게 떠나갔다.'“아빠, 아빠.”'짓이겨진 자동차 안에서 미약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출동한 경찰과 목격자, 그리고 사고를 낸 당사자가 엉켜 어수선했다. 얼이 빠진 표정으로 갓길에 서 있는 미란의 눈에 낡은 봉고트럭이 보였다. 짐칸에서 쏟아져 나온 주류박스와 깨진 병조각들이 현장을 더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요란한 소리에 갓길에는 잠시 눈을 붙이고자 정차한 영업용 대형 트럭들이 차창으로 하나둘 삐죽이 얼굴이 나왔다. 간혹 남자 운전자 다음에 요란한 화장을 한 여자도 고개를 들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어두운 밤, 짝을 지어 함께 다니던 동료들이었다. 그녀 또한 줄행랑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여기서 재수 없이 걸리면 영창 행이었다. 어쩐지 처참하게 뒹군 트럭과 트럭이 토해낸 주류박스들이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서둘러 등을 돌려 도로가 빼곡히 솟은 어둠속으로 숨어들려던 찰나, 미란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 또한 낯이 익었다. 그녀는 기겁을 하며 뛰어가 몸을 엎드리고는 뒤집힌 차량 내부를 들여다보았다.'“정수니? 정수야?”'아이가 뒤집힌 차량 천장에 누워 있었다. 미란은 질겁하여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아앙! 엄마.”'“정수야, 아파? 많이 아프니? 어디 아파? 나에게 올 수 있겠어?”'“엄마아.”'아이가 의식을 잃으려는 듯 눈을 까집더니 눈동자가 희끄무레해졌다.'“뭐합니까? 폭발 위험이 있으니 떨어지십시오.”'경찰이 달려와 미란을 일으켜 세우며 권위적으로 말했다.'“아이가 있어요. 네 살배기예요. 빨리 꺼내주세요. 어떻게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거예요!”'미란은 경기하듯 소리쳤다. 그제야 주위가 삽시간에 웅성거리더니, 아이를 꺼내니 마니 하는 소란이 일었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고 구조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다. 다행히 여자 아이는 이마에 타박상 말고는 별 상처는 없는 듯 보였지만, 만일을 대비해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아이 보호자는 타세요.”'미란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그 차에 올랐다. 그녀가 오르자마자 구급차는 숨 가쁘게 앵앵거렸다.''“강태호 씨 보호자 분!”'나이가 지긋한 간호사가 미란을 불렀다. 병원 대기실에서 네 살배기 여자애를 품에 안아 재우던 그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죄송합니다만 강태호 씨께서 명을 달리하셨습니다.”'미란은 아이를 안타깝게 내려다보았다. 며칠 잠을 자지 못해 온몸은 천근이었으나, 자신처럼 피붙이 하나 없는 천애의 고아가 된 정수의 미래가 더 무거워 보였다.'“얘야…… 이를 어쩌면 좋으니…… 불쌍해서.”'미란의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