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 바나나 맛 키스 >'''“앗, 뜨거!”'서영은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물며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곁에서 책을 읽고 있던 수원이 한심한 듯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진짜 내가 안 도와줘도 돼?”'“그럼요!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오늘 안에 먹을 수나 있는 거야?”'수원은 벽에 걸린 심플한 은색 아날로그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오후 두시.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났건만 완성된 음식은 퉁퉁 불은 스파게티 면발뿐이었다. '“안 되겠어요. 다시 처음부터…….”'다시 끓인 면발 - 데우려고 했다 - 은 보기 흉하게 불어있었기에 서영은 한숨을 내쉬고는 면이 담긴 냄비를 가스렌지에서 들어 올렸다. 싱크대에 향하는 도중에 서영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무언가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어어?”'중심을 잃은 서영이 들고 있던 냄비가 떨어지면서 서영의 발등에 뜨거운 물세례를 퍼부었다. 서영은 낮은 비명를 지르며 자신의 왼쪽 발을 붙들었다.'“아야!”'수원은 약간 당황한 듯 어쩔줄 몰라 하다가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서영을 번쩍 들어 올렸다.'“으앗, 뭐 하는 거예요?”'“가만히 있어, 무거워.”'수원은 침착하게 그녀를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히고는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했다. 곧 수원은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대야를 들고 왔다. 그가 서영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자 서영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발.”'서영이 두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수원은 들은 척 만 척 손을 내밀었다.'“괜찮……어어?”'서영이 발을 내밀 기미가 없자 수원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을 들어 올렸다.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발을 내맡긴다는 건 굉장히 껄끄러운 일이었다. 발은 늘 더럽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달까. 그런 발을 아직까진 낯선 남자에게 내어준다는 건 뭐랄까, 굉장히도 부끄럽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앗, 차거.”'갑자기 차가운 물에 발이 닿자 서영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수원은 그런 서영을 보고 작게 웃고는 그녀의 발을 찬물에서 부드럽게 문질렀다. 서영은 알 수 없는 짜릿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인 수원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남자다워 보이는 건 왜일까.'“하고나면 좀 나아질거야.”'수원은 고개를 살짝 들고는 서영을 바라보았다. 서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보였다. 조그맣고 하얀 발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고 반듯했다. 수원은 대야를 옆으로 치워두고 마른 수건으로 그녀의 발을 닦아 주었다.'“고마워요.”'서영이 작게 말하자 수원은 숙였던 몸을 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곧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서영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서영은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숨이 가빠왔고 눈앞이 흐릿해졌다.'뭐, 뭐 하는 짓이에요?'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마음대로 열리지 않았다. 수원은 곧 그녀의 발에서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서영은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수원은 그녀의 오른쪽 손을 끌어당겼다. 이번엔 그의 입술이 서영의 검지손가락에 닿았다. 서영은 온 몸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수원은 마치 그녀가 데인 곳들을 하나하나 낫게 해주려는 듯 천천히 보드라운 서영의 피부를 위로했다. 수원이 다시금 그녀와 눈을 맞추자 서영은 그녀 자신도 모르게 큰 숨을 들이켰다.'“미리 그림값 받아도 되지?”'수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영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이번엔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가벼운 깃털처럼 그의 입술이 스치듯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괜찮아?'그의 눈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서영은 알 것 같았다. 서영은 잠깐 망설이는 듯 하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수원이 작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곧 그의 입술은 그녀의 이마에 따뜻한 키스를 했고 뒤이어 다시 그녀의 입술에 다가왔다. 애타게 하지만, 부드럽게 그의 입술이 서영의 입가를 맴도는 듯 하더니 곧 낯선 침입자가 그녀의 입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달콤해.'그는 뜨겁지만 달콤했다. 바나나 우유향이 입안 가득 퍼져 왔다. 서영은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듯 했다. 꼭 감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머릿속은 벌써 새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입술이 좀 더 강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탐하자 서영은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아릿한 흥분을 느꼈다. 서영은 자연스럽게 수원의 목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수원도 그녀의 날씬한 허리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이전까지 누구도 침입하지 않았던 은밀한 입안은 그로 인해 알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