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던 노래방이 문을 닫아, 임시방편으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들어온 곳이었다. 건물 자체가 유흥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후미진 곳에 있어서인지 당장 문을 닫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상호명과는 달리 또 오는 손님은 없는 듯했다.'‘누가 김추자 노랠 저렇게 불러?’'민형이 일없이 복도를 서성이고 있을 때, 조용한 복도 너머로 어디선가 가녀린 느낌의 여자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썩 잘 부르지도 못하는데다가 목소리만 들어서는 마치 어린애가 어른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언밸런스한 느낌.'“음료수 이것저것 섞어서 여섯 개 주세요.”'민형이 프런트에서 음료수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여자의 노랫소리는 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근원을 찾던 그는, 입구 쪽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저 아가씨는 저희 노래방 단골이에요. 이 건물 꼭대기 층에서 화실을 하는데 젊은 사람이 매번 와서 김추자 씨 노래만 반복해서 부르고 가곤 하지요. 첨엔 어찌나 웃기던지.”'민형의 시선이 입구 쪽 방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본 주인 남자가 음료수를 쟁반에 담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민형은 별 관심 없다는 듯 얼른 고개를 돌리며 지갑을 꺼내 음료수 값을 지불했다.'“오늘따라 님은 먼 곳에만 죽어라 불러대네. 뭔 일 있나?”'음료수를 들고 방으로 돌아가는 민형의 등 뒤로 주인 남자의 혼잣말이 들려왔다.''‘이런 젠장국에 밥 말아먹을.’'민형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기계의 남은 시간을 알리는 숫자가 10이 되었기에 곧 끝나겠구나 하며 안도의 숨을 뱉으려는 찰나, 갑자기 60으로 바뀌어 버리는 시추에이션!'하지만 다른 이들은 후한 서비스에 열광하며 다음부턴 이 노래방에만 와야겠다고 이구동성으로 환호성마저 질러댔다.'‘주인아저씨 인상이 영 맘에 안 들더니, 결국 일을 치시는구만.’'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민형은 차라리 밖에 앉아 대충 TV나 볼 요량으로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어라? 아직 있어?’'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입구 쪽 그 방에서는 아까와 똑같은 목소리로 김추자의 다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형편없는 노래 실력이었다.'민형은 문득 그 목소리의 실체가 궁금해져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방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침 홀에는 주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민형이 문 앞으로 다가가 위쪽에 작게 붙어 있는 유리창으로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자는 마침 문 쪽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방향에 앉아서 마이크를 삼킬 듯 입에 가까이 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목소리만큼이나 가녀린 모습이었다.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긴 생머리에 많이 말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왜소해 보였다.'‘이런!’'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바싹 붙이고 쳐다보던 민형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여자의 눈과 정통으로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그는 잽싸게 몸을 돌려 일행들이 있는 방 안으로 숨듯 서둘러 돌아갔다.'‘이게 무슨 꼴이야. 볼썽사납게.’'여느 때보다 훨씬 구겨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민형의 얼굴은 혼자 붉으락푸르락 난리도 아니었다.'‘거긴 왜 들여다보고 난리야! 무슨 사춘기도 아니고, 괜히 남의 방 훔쳐보다 들킨 놈처럼 후다닥 도망가는 꼴이라니.’'무엇보다 그의 기분을 찜찜하게 만든 것은 유난히 커다랗던 그녀의 눈. 그리고 그것이 민형의 뇌리에 너무나 깊숙이 박혀 버려 떨쳐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여전히 꼴사납게 넥타이를 머리에 매달고 엉거주춤한 폼으로 춤까지 추는 규석을 뒤로하고 민형은 아예 집으로 갈 결심을 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