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한 콧날. 길게 찢어져 날카로워 보이면서도 서늘한 눈. 붉은 기를 머금은 입술이 얇지도 두껍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저하의 얼굴을 올려다보다니. 어찌 내가 이런 실수를……. 게다가 저하와 눈까지 마주쳤다.'“나와 눈이 마주친 건 처음이겠구나.”'“…….”'“이제는 놀라 말도 잊었더냐?”'“…….”'“오늘도 잠이 오지 않더냐?”'“예.” '“나도 그러하다.”'겨우 대답한 내 말에 나직이 말씀하시고는 더 가까이 오셨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한참 그렇게 서있기만 하셨다. 그러다 저하의 손이 이번에는 내 왼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는 나를 당겼다. 이유도 모르는 채 저하의 손이 이끄는 대로 후원 옆의 숲으로 들어갔다.'“사람들의 눈이 있지 않겠느냐?”'그래서 나를 끈 듯 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서있는 나를 저하께서 앉으시며 아래로 당겼다. 원치 않게 저하와 마주하며 앉는 꼴이 됐다. 저하께서 나보다 훨씬 크니 앉아도 저하의 가슴 언저리까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내 손을 잡은 손을 풀지 않은 채 저하의 다른 한 손이 내 턱을 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턱을 올리며 내 고개를 들게 했다. 올라가고 올라가다 저하의 서늘한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가까이 보니 더 아름답구나.”'황망함에 황급히 눈을 내리 깔았다. 저하의 손이 아직도 내 턱을 잡고 있는 상태여서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 그러다 턱을 잡았던 손을 올려 부드럽게 내 뺨을 어루만지셨다.'내 손은 아직도 저하의 손에 잡혀 있는 상태였고 내 뺨을 어루만지는 손은 부드럽기만 했다.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주위에는 모두 나무가 둘러싸고 있었다.'“네 뺨을 만져보고 싶었다. 보이는 것처럼 부드러운지…….”'그러다 내 입술을 손가락이 더듬으셨다.'“이 입술에 내 입술을 대면 어떨까? 이 입안은 어떨까?”'그리고는 손을 뒤로 하여 내 머리를 앞으로 살짝 당기면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셨다. 그리고 내 입술에 저하의 입술이 닿았다. 맞닿은 입술이 뜨거웠다.'입술만을 대고 있다가 저하의 입술이 열리며 혀가 내 입술을 간질였다. 그러다가 이내 내 입술을 벌리며 입안으로 들어왔다. 반항도 어떤 것도 없이 저하께서 하시는 대로 그대로 있었다. 혀가 내려와 내 혀를 부드럽게 감싸고 빨아들였다.'처음 당하는 일이라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드니 풀 위에 내가 누워있고 저하의 몸이 내 위에 있었다. 그 상황에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내가 어떤 상태라는 것을 그제야 자각했다. 아직도 저하의 혀는 내 입안에 있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도 모르게 저하를 밀어내고는 일어나 앉았다. 나도 저하도 그 입맞춤으로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이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네가 본방나인이라서 말이냐?”'나도 저하도 아직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저하의 손이 내 팔을 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저하, 저는 단순히 본방나인이 아니옵니다.”'“…….”'“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사옵니다. 그리고 아비에 대해 알지도 못할 때 아비를 잃었사옵니다. 그런 저를 거두어 키워주신 분이 빈궁 마마시옵니다. 저를 돌봐주고 아껴주신 분이옵니다.”'“…….”'“어찌 제가 빈궁 마마를 배신 할 수 있단 말이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있어서도 아니 되는 일이옵니다.”'아직 쌀쌀한 바람이 식어가는 내 뺨을 할퀴었다. 저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나를 바라만 보셨다.'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저하에게 두었던 시선을 돌렸다. 싸늘한 바람이 저하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저하께서는 아무 말씀 하지 않고 계속 침묵하셨다.'오랜 침묵 후 저하께서 내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뒤돌아 자리에서 벗어나셨다.'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다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풀려진 고름을 묶으며 떨어지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빈궁마마께는 더더욱 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사는 동안 내내 후회할지 몰랐으나 아직 나는 그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은 내 눈가를 적시게 했다. 그 자리에서 이내 쓰러져 한참을 울었다. 저하 때문인지 빈궁 마마 때문인지 알 지 못한 채 그대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는 날이 밝기 전 방으로 돌아와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는 끝난 것일지 몰랐다. 하지만 후회해서도, 후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