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이야기 ''''''어둠의 장막이 드리운 가운데 주변은 모두 잠들었지만, 오직 한 곳만은 어렴풋한 빛이 어둠을 뚫고 밖으로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달빛에 은은히 비친 여인의 형상은 애련하면서도 무척이나 고왔다.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던 창 속 그림자의 손 부분이 어느 한순간 천천히 움직였다.'“하아, 미안하구나. 날 용서하지 마라.”'붓을 쥔 여인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어느새 볼을 타고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종이를 적셔 애써 적어 놓았던 글을 얼룩지게 했다. 점점 번져나가는 먹을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에도 깊은 시름이 먹물과 함께 퍼져나갔다.'여리게 흔들리는 등촉의 불빛도 그녀의 심정에 동의하는 듯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한참을 눈물짓던 여인은 다시금 붓을 잡고 무언가를 적어 내렸다. 흰 종이 위에는 오로지 붓이 스치는 소리만이 가득했고, 종이의 흰색과 검은색 먹의 조화만 아우러질 뿐이다. '붓을 내려놓은 여인의 어깨는 시리도록 고왔다. 더러움을 모르는 얇고도 흰 비단만을 걸친 얼굴은 흰 비단보다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치, 속세의 더러움을 모르는 선녀와 같았으나 섬세한 이목구비에 굽이굽이 서린 한은 그녀가 한 많은 인간임을 되새기게 했다. '날을 세워가며 서신을 곱고도 정성껏 접은 그녀의 손길 하나하나에는 미처 놓지 못한 미련과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바들거리는 손끝을 애써 진정시키며, 그녀는 두 통의 서신을 마련해 놓은 후 문을 열었다. 밖에서는 이미 대기하고 있었던 듯, 나이가 지긋한 궁인 한 사람이 애처롭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이것을 국주에게 가져다주세요. 잘 부탁드려요.”'“알겠습니다.”'“그리고…… 사랑한다고…… 아니, 됐어요.”'얼굴에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범벅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힘들게 얼굴을 돌리고는 품속을 뒤졌다.'“그 애에게 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