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스케일 리조트는 국내 최대 규모와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스키장 오픈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제설작업과 장비점검으로 분주하였다. '예년보다 한파가 일찍 찾아온 덕에 모든 스키장은 환호하였다. 스키 시즌이 짧을 때는 2개월도 채 못 채우지만, 올해는 한파가 일찍 찾아오고 평년 기온보다 2~3도가 낮다는 예보에 3개월을 꽉 채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었다. '예정보다 개장을 서두르는 바람에 준비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은 것에 비해서 시간은 매우 촉박했다.'200여명의 패트롤(안전분과 안전요원)과 스키 강사진이 슬로프를 거슬러 올라가며 제설된 슬로프의 상태와 팬스(안전망)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었다.'한 남자가 오열하듯 외쳤다. '“제발요, 과장님! 촌에 혼자 계신 할머님께서 거동이 불편하여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드신다고 합니다. 부탁드립니다.”'슬로프의 중간 지점 펜스를 점검 중이었던 스포츠 영업팀에 과장 어휘문이 애써 화를 억누르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면서 그의 뒤를 따르던 남자를 질책하였다.'“김우진 씨. 지금 당장 휴가를 내달라고 하면 김우진 씨가 맡기로 한 수강생들은 누가 맡습니까? 그리고 이주일이나 휴가를 내달라니요? 시즌 초기에 레슨을 받으려는 수강생이 제일 많이 밀려든다는 것을 강사 4년차인 김우진 씨가 모르진 안잖습니까? 수강생들이 잔뜩 밀려서 가뜩이나 강사도 부족한데 김우진 씨 입장만 생각하고 다른 강사를 구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하면 어쩝니까?”'“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서…….”'우진이 연방 고개를 조아리고 사정하였지만 휘문은 야멸치게 다그쳤다.'“죄송하다면 답니까?”'끝내 우진이 눈밭에 무릎을 꿇었다. 휘문은 기가 막힌 표정을 잠깐 지었으나 더욱 분개해 하며 매몰차게 말했다.'“대체할 강사를 구하기 전까지는 휴가 못 드립니다. 김우진 씨가 직접 구해서 구해다 놓고 다녀오세요.”'“내가 대신 하죠.”'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휘문과 우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응? 헉!”'“아아…….”'두 사람의 입에서 탄식 비슷한 신음이 흘러나왔고, 순식간에 낯빛이 변하며 난감함과 낭패감을 드리웠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책을 느꼈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자 얼굴 근육들이 부들부들 떨렸는데 복잡 미묘하게 흔들리는 두 쌍의 눈동자는 문제의 남자를 담아내고 있었다.'남자는 페인트로 얼룩진 너저분한 스키복을 입은 남자는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서 털북숭이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최근에 들어서 설원의 오랑우탄, 고릴라, 북극곰, 페인트쟁이, 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남자였다.'설원의 고릴라가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스쳐지나가며 심드렁하게 물었다.'“왜요? 내 스키 실력을 못 믿습니까, 어 과장?”'“그건 아니지만…….”'우진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도 야멸치게 타박하던 휘문이었다. 그런 휘문이 탐탁지 않은 얼굴을 하면서도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휴가를 얻어서 기뻐해야할 우진도 오히려 죄스러운 표정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그럼 됐습니다. 김우진 씨는 어서 가서 할머님 병간호에 힘쓰세요.”'남자는 펜스를 넘어서 옥외 간판으로 갔다. 대형 간판엔 스키퍼가 하늘을 나는 박진감 넘치는 그림이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다. 오늘 마무리를 되면 내일부터는 슬로프 하면에 있는 옥외간판을 작업해야할 것이다.'작업대로 올라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흘금 바라보는 휘문이 크게 탄식을 터트렸다.'“어휴우. 또 컴플레인이 오지게 쏟아지겠구나…….”'뒷일이 염려가 되어서 일까?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우진은 끄끅거리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휘문은 이를 꽉 물고 입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