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서른이 되셨어요. 결혼할 나이인데, 사귀는 여자 친구 없으세요?'- 그러게 말이에요. 빨리 사귀고 싶은데 아직 없어요.'유림은 로또복권 OMR 종이에 검은 동그라미를 칠하다 말고 저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제멋대로 뚫린 귀로 여과 없이 들려오는 거짓부렁에 웃음이 나왔다.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할 텐가. '한류스타 강시혁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땡땡이 백화점 잡화 매니저와 사귄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떡밥이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돌고 있는 거였다. '게다가 유림은 한 달 전에 그 땡땡이 백화점 잡화 매니저가 매미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착 붙어 걸어가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꼭 시혁과 닮은 남자였다. 파파라치의 카메라 렌즈는 피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귀신같은 유림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놓치지 않았다. '로또판매점 안주인은 시혁이 나오는 프로에 심각하게 빠져들며 작은 배불뚝이 TV 앞으로 엉덩이를 끌어 앉았다. 이어 시혁의 몸짓, 손짓에 희한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말하자면 좋아죽겠다는 흐느낌이었다. '이 아줌마가 순진하긴. 지금 쟤가 지껄이고 있는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거 아니죠? 저 얼굴에 저 바디에 여자가 없을 것 같아요?'- 바빠서 여자 만날 시간이 없어요.'웃기고 자빠졌네. 바빠도 연애질, 결혼질 잘만 하더라. '- 어떤 타입의 여자에게 끌리세요?'- 갈수록 이상형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통통한 여자가 좋다, 웃을 때 뒤끝 없이 예쁜 여자가 좋다 그랬는데……, 그냥 이해심이 많은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내가 바빠도 기다려줄 수 있는 여자요.'쟤한테 통통한 여자의 기준은 뭐야? '우연히 땡땡이 백화점 잡화 매니저를 목격한 사실을 덕진 씨한테 털어놓은 뒤로, 유림은 아주 괴로운 입장이 되었다. 끼니 때 밥 한 공기 추가할 때면 덕진 씨는 한번쯤 날씬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느냐며 구박을 했다. 시혁과 염문설이 있는 잡화 매니저는 44사이즈의 콜라병 몸매라서 직접 피팅 모델로 나설 정도라나. 그럴 때면 유림은 그러니까 그 여자애는 강시혁 같은 대단한 남자를 만나고 있는 거고, 나는 당신과 같은 남자를 만나고 있는 거라고 반박했다. 그러면 덕진 씨는 또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자기 같은 남자라는 건 뭘 뜻하는 거냐고. '아무 득실 없는 이런 사소한 말싸움으로 소모전을 벌여야 하는 일이 잦았기에 유림은 시혁이 볼수록 짜증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