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백 프로의 가을 햇살이 태제의 머리 위로 찬란한 빛 가루를 흩날리며 쏟아져 내렸다. 사람이 만든다면 저토록 맑은 색을 낼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을 주는 하늘을 바라보는 태제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이맘때의 태제는 항상 웃음을 달고 살았다. 더위에 맥을 못 추고, 몸에 열이 많은 그는 다른 사람들이 여름이 지나갔다고 여기는 것보다 훨씬 늦게 가을을 실감하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즈음이다. 나무들이 색색이 고운 옷을 갈아입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때가 오면 태제는 일 년을 살아낸 보람을 느끼곤 했다.'정수리가 따끈따끈해지도록 내리쬐는 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지만 태제는 그늘을 찾을 마음이 없었다. 조금 더 지금의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하고 싶어 가만히 눈을 감았다.'“아, 좋다!”'태제는 특유의 느릿한 목소리로 자신의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표현했다. 다른 사람들이 정말 좋을 때 목소리에 싣는 감정에 비하면 십 분의 일도 미치지 않았지만 태제로서는 한껏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태제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바로 앞에 펼쳐진 완만한 곡선들이 이마를 맞댄 처마를 바라보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 곡선을 바라보는 태제의 얼굴에 편안함이 감돌았다. 태제는 이 나라 산등성의 모양을 닮은 그 곡선을 사랑했다.'“아이고, 사장님 안적도 이러고 계시드래요?”'“사장님 아니라니까 그러세요, 아주머니.”'“내 월급 안 밀리고 꼬박꼬박 챙겨 주고, 따순 잠자리 주는 사람이 사장님이 아이면 누가 사장이드래요? 구멍가게 주인도 마카 사장 명함 파가지고 다니는 세상에, 이만 한 집에 번듯한 코피 가게를 네댓 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장이 아이라고 하면 이 나라 사장들 절반은 눈 흘기드래요.”'“예, 예. 저 사장 맞습니다, 아주머니.”'태제는 자신이 한 마디 할 때 열 마디를 쏟는 정선댁의 입담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동조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오늘 해가 다 저물도록 정선댁이 토해내는 사장 론에 시달리리라.'“그 보드래요. 그나저나 진지 드시래요. 시간이 멫 신데 안적 밥도 안 드시고 있으면 뻬 곯아요.”'“혜찬이 오면 같이 먹을게요.”'“가는 학교에서 급식 먹고 오는 거 아시면서 그러시드래요.”'“그래도요.”'“참말로 벨난 부자간이드래요.”'더없이 유한 태제지만 한 번 아니라 고개를 저은 것을 번복하는 일이 없는 그를 알기에 정선댁은 혀를 끌끌 차면서도 다시 권하지 않았다. 그저 낡은 플라스틱 슬리퍼를 찍찍 끌며 태제가 앉아 있는 평상에서 멀어져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음 짓던 태제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얼마 안 있으면 혜찬의 학교가 파할 시간이었다. 이런 날 혜찬을 마중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여긴 태제는 긴 다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190에 육박하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높았던 지붕이 가깝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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