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프린트의 원피스는 강휘의 몸에 착 감겨 마치 원초적인 피부 같았다. 강휘의 주변으로 검정 양복차림의 백댄서들이 정지 자세를 취하고 사회자의 멘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휘는 객석을 등지고 서서 몸매를 완전히 드러내주는 원피스 차림에도 날렵해 보이는 자세로 백댄서들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여러분,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레이싱 카에 올랐을 때는 여자로 안 보인다. 그저 ‘11번이 오늘도 쾌주하는구나.’ 하고 감탄할 뿐이다.> 이 말이 누구를 두고 한 말인지 알고 계십니까? 팀의 홍보를 위해서라면 비키니 사진 촬영조차 마다않는 적극적인 성격의 여성 카레이서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모델 겸 배우 임강휘 씨의 무대입니다.”'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무대의 천정에 강한 조명이 들어왔다. 객석이 술렁였다. 하지만 강휘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강휘는 객석을 등진 자세 그대로 진한 화장을 한 얼굴을 틀어 객석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주변의 백댄서들이 화려한 춤사위와 함께 강휘의 발목에서부터 종아리를 지나 엉덩이까지 손으로 훑자 객석의 술렁임은 극에 달했다. 조명의 마술에 힘입어 살색 원피스 차림의 강휘의 뒷모습은 마치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전주가 지나가고 노래 가사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강휘는 긴속눈썹에 잠긴 시선을 객석에 고정한 채 정면을 향해 몸을 돌렸다. 순간 객석에서는 극도의 긴장에서 풀려난 듯 숨이 멎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객석을 메웠다. 유쾌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전라 퍼포먼스>'오늘을 위해 강휘가 특별히 생각한 이벤트였다. 결식아동 돕기 자선 공연에 가수도 아니고 노래를 잘 하지도 못하는 강휘가 초대됐을 때, 강휘는 그냥 웃다가 가는 얼굴마담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뒷면은 스킨 톤이고 앞면은 화려한 프린팅이 된 몸에 잘 달라붙는 원피스였다. 그리고 퍼포먼스는 성공이었다.''원영의 시선이 그대로 잡지 표지에 못 박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인의 뒷모습이 잡지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원영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공기가 멈춘 것처럼 답답한 시간이 흘러갔다. 소파 옆 탁자의 잡지 속에선 늘씬한 뒤태를 자랑하는 임강휘가 차갑고 치명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고 있었다. ''원영은 차가운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강휘의 모습을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지우려하면 할수록 강휘의 모습은 점점 생생해지기만 했다. 덜덜 떨리는 입술로 포기하고 나오던 순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무시하려했으나 끈질기게 울리는 벨소리에 원영은 할 수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여보세요?>'원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수화기 너머의 다급한 목소리는 분명 강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젠장! 무슨 일진이 이렇담?’'<저기……, 오빠, 아버지가…… 쓰러지셨어.>'그제야 원영은 강휘의 목소리가 극도로 긴장돼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와 줄래?>'강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