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좋겠군.”'한상은 밸런타인 클럽 왼편으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가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가득 쌓인,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터를 발견했다. 밸런타인에서 불과 1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공터는 5층짜리 빌딩을 등지고 있었고 한쪽으로 문짝이 떨어져나간 비상구 같은 입구가 만들어져 있긴 했지만, 그 문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듯 불도 켜지지 않고 어두웠다. 인적도 드물고 좁은 골목을 한참 더 올라가야 큰길과 연결되니 눈에 띌 걱정도 없었다.'한상은 늑대에게 전화를 걸었다.'“예, 형님.”'늑대가 차안에서 전화를 받았다.'“내가 보이나? 왼쪽 골목이다.”'한상이 늑대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예. 보입니다, 형님.”'“놈들이 들어갔다 나오면 이쪽으로 유인해.”'“예, 형님.”'한상은 주변을 살피다가 문짝이 떨어져나간 비상구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조혁이 밸런타인 클럽에 드나들며 영업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 열흘 전이었다. 원래 밸런타인 클럽은 박호석의 구역에서 영업하며 박호석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하던 클럽이었던데 넉 달 전 하청수의 조직이 박호석의 구역을 접수하면서 밸런타인 클럽도 자연스럽게 하청수의 조직으로 흡수되었었다. '밸런타인 클럽은 구역 내에서 가장 큰 수익을 내는 영업장이었기 때문에 상납금 역시 컸는데 조혁은 자신이 맡아 관리하던 밸런타인이 하청수에게 넘어가자 분명 몹시 분하고 아까웠을 것이다. '조혁은 사실 구역이 하청수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청수는 조직의 우두머리긴 했지만 철저하게 모습을 숨긴 채 그림자처럼 움직였고 조직의 일인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진태우였기 때문이다. '조혁은 하청수가 아닌 진태우에게 구역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진태우가 발렌타인 관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곧장 움직인 것이다. '실제로 하청수는 굳이 밸런타인 클럽에 대원들을 보내지 않았고 클럽 사장이 알아서 상납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밸런타인 클럽을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둔 것은 박호석이 함정에 걸려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 분명 박호석은 다시 움직일 것이고 박호석이 움직일 때 다시 한 번 제대로 혼쭐을 내줄 계획이었다. '하청수는 조혁이 밸런타인을 관리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조혁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놓은 것인데 아둔한 조혁은 하청수가 파 놓은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어 주었다.'하청수는 조혁을 처리하는 일을 특별히 한상에게 맡겨주었다. 한상이 박호석을 비롯해 그의 수하인 조혁과 도식에게 얼마나 큰 원한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5년을 기다린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