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지는 심장이 쿵쿵 댔다. 김진호였다. 분명, 김진호다.'그녀는 눈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았다. 그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사장이 얼른 혜지에게 속삭였다.'“바로 제가 말한 사진작가예요. 인사 나눌래요?”'혜지는 도저히 그와 인사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 젓고 말했다.'“아니에요. 오늘은 바빠서 그만 가고, 내일 보죠. 갈게요.”'혜지는 쿵쿵 소리를 내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걷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되돌아가 김진호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에게 큰 소리로 쏘아붙였다.'“이보세요! 다음부터는 사람을 보면 아는 척 좀 하세요! 알았어요?”'부들부들 떨면서 혜지가 외치는데도 그 남자는 멍한 눈초리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혜지는 너무 기가 막혀 더 따지고 싶었지만 얼굴이 다시 빨갛게 익어가서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장까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정말 이상하다. 저 놈 머리가 나쁜 건가? 나에게 그렇게 관심 없어도 그렇지. 혹시, 혹시?……!’'혜지는 뭔가가 짚이는 게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당장 해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해정아, 나 혜지인데 바빠?”'“아니, 안 바빠. 왜 그러는데?”'“저기 물어 볼 게 있어서, 김진호 말인데.”'“김진호? 그 사람이 왜? 야! 그 사람 바람둥이라고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가까이 하라고 해도 안 해. 내가 얼마나 열 받았는데, 근데 조금 이상한 게 있어서 물어 보려고. 그 사람 혹시 쌍둥이 아니니?”'“어떻게 알았어?”'“!”'“아닌 게 아니라, 우리 신랑이 진호가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별로 쌍둥이 동생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어서 자기도 몰랐다가 오해 한 일도 있었대. 분명히 김진호 맞는데 아는 척 안하고 그냥 싹 하고 지나가서 나중에 진호 씨에게 얘기했더니 자기 쌍둥이라고 실토하더래. 그런데 다른 쌍둥이하고 달리 별로 자기 동생에 대해서 얘기 하고 싶어 하지 않다던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세상에. 그랬구나. 내가 그 쌍둥이 동생 봤잖아. 아이, 어떡해. 미치겠다. 나 왜 이러니? 쌍둥이 형제에게 골고루 망신살 뻗쳤네. 무슨 악연이래.”'“무슨 일 있었어?”'“무슨 일 정도가 아니다. 내일 당장 봐야 하는데 이게 무슨 망신이야. 아이 미치겠다. 내일 마스크를 끼고 가던지 해야지 원.”'“너 혹시 진호 씨 동생에게 들이댔니? 어이쿠, 혜지가 요즘 20대 끝물이라고 안하던 짓 하네. 쯧쯧쯧……. 참! 그리고 그때 명함 줬던 그 남자. 김진호 맞더라. 내가 그때 신랑친구들 누가 누군지 몰라서 헷갈려 하고 있었는데 신랑이 얘기해주더라. 바람둥이만 아니라면 다시 만나게 해줄 텐데. 그래도 만나 볼래?”'“휴우, 내가 지금 그 김진호 만날 정신 아니다. 그냥 조용히, 조용히, 당분간 조용히 살란다. 끊어라.”'“그래. 싫으면 말구. 너무 심난해 하지 말구. 끊어.”'전화를 끊고서도 혜지는 얼굴이 뜨거웠다. 아니 전화를 끊고 나서 점점 더 뜨거워졌다. '김진호가 명함을 준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을 정도로 온 몸이 뜨끈뜨끈해졌다. '‘아…… 심히 괴롭도다.’'혜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