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또 기억나는 거 없어?”'정우의 물음에 희연이 볼을 부풀리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잠시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녀. 구멍이 뚫린 듯 듬성듬성한 희연의 기억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는 부분은 6개월 남짓한 정우와의 결혼 생활뿐이었다.'“우와, 이게 우리 집이에요?”'차에서 폴짝 뛰어내려 집 안으로 들어가는 희연을 정우가 느린 걸음으로 뒤따랐다. 갑자기 아이가 된 듯한 그녀를 보며 정우는 예전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 중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졌지만 감정이나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지금의 그녀는 지독히도 사랑스러웠다. '“이건…….”'이 방 저 방 구경하느라 뛰어다니던 희연이 거실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액자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두 사람의 결혼사진. 하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한 얼굴은 아니었다. 한참동안 사진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희연이 옆에 서 있던 정우에게 물었다.'“이게, 진짜 나란 말이에요? 진짜 우리가 부부라구요?”'“안 믿겨? 그럼 여기까지 왜 따라온 거야?”'“의사가 남편이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았죠. 근데…… 진짜네.”'멍한 표정의 희연을 보며 피식 웃던 그가 양복 상의를 소파 위에 벗어 두고 그녀에게 물었다.'“배 안 고파?”'“음……, 조금.”'“뭐 만들어 줄까?”'심각하게 고민하는 희연을 보며 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태껏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 몰랐다는 사실이 이제껏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무심했는지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