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낮게 내려 앉아 있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청명하고 높기로 유명한데, 만 4년 만에 찾은 하늘은 자신이 가진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무겁고 낮게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는 수연의 눈빛에는 그리움과 처연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천천히 눈에 새기듯 주변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매에는 어린 나이의 철부지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혼자 아파했던 세월만큼이나 성숙해진 눈매가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종산은 가을의 마지막을 알리듯 울긋불긋했고, 정리가 잘 된 봉분 앞에 서자, 수연은 울컥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처연한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수연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차희와 함께 바로 충주로 내려왔었다. '비행기에서 막 내린 차림 그대로 아버지의 묘 앞에 선 수연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울먹임을 삼키고 있었다. '베이지색 싱글 코트에 아래의 낮은 로퍼 차림이 보여주듯 수연은 성묘를 오기 위해 준비를 한 모습이 아이었다. 한국 땅에 닿자마자 그리움에 급하게 이곳으로 온 티가 역력했다. '무뎌질 만하지만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찾아온 수연의 마른 어깨가 간헐적으로 흔들렸다.'“아버지, 막내 왔어요.”'금방이라도 우리 수연이 왔니? 하면서 인자한 웃음을 보여주실 것만 같은데, 떼마저 누렇게 변한 봉분은 그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엄마가 누워 있던 산소에 아버지가 함께 누워 있었다. '그녀의 기억이 있었던 순간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찾아 왔던 엄마의 무덤가는, 누군가가 금방 손을 본 것처럼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음에서 아내를 떠내 보내지 못한 그리움을 나타내듯 시간이 날 때면 여기에 와서 주변을 정리하던 아버지였다. 그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전과 똑같이 무덤가는 잡풀 하나 없이 정갈했다. '“엄마 옆에 있으니까 좋으세요?”'묻지 않아도 그럴 것이다. 죽은 아내를 20년 가까이 그리며 다른 사람에게 곁을 허락하지 않은 분이었으니까. '수연은 몸에 걸친 코트를 벗어 누런 잔디 위에 내려놓았다. 차희가 옆에서 그 모습에 젖은 눈가를 눌렀지만, 수연은 차분히 봉분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절을 마친 수연은 무덤 앞에 무릎을 가지런히 꿇고 앉아 허리를 반듯하게 세웠다. '조용한 음성으로 마치 앞에 있는 사람을 대하듯 봉문을 마주하고 조분조분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저 한국에 왔으니까 이제는 자주자주 올게요.”'큰 잘못을 해도 앞으로 조심해라, 한마디로 용서해주시던 당신, 아빠 미안해요 한마디에 서운하게 한 모든 것을 잊어주시던 분이었다. '장하다 우리 딸 하며 당장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실 것만 같은데,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뵐 수 없는 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사랑한다 소리해주시고, 당신은 아파 밥도 못 드시면서도 우리 딸 잊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꼬박꼬박 걱정해주시던 분……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쉼 없이 솟아났다. '“아가씨 바닥이 차요.”'“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