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래?”'채은이 두 눈을 반짝이며 지수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지수는 ‘폭풍’ 제작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폭풍’은 외주 제작사인 ‘드림 월드’에서 제작하는 드라마로 남자 주인공인 ‘미유’ 역엔 한서율이 오래전에 내정 되어 있었다. 그의 상대역인 ‘유라’ 역은 신인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고 있었다. 1300: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1, 2차 오디션을 모두 통과한 채은은 이제 마지막 3차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채은은 10년 전이었던 그녀의 나이 열 살 때부터 한서율의 팬이었다. 그녀가 배우가 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한서율과 함께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그녀가 신인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와 어릴 적부터 친분이 있었던 지수가 매니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은은 안 된다는 지수를 무작정 따라 다니며 떼를 썼었다. 그런 그녀가 귀찮았던 지수는 카메라 테스트나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 물론 기획사 사장인 준기에겐 적당히 잘라달라고 부탁을 해둔 후였다. 그러나 준기는 채은을 보자마자 바로 O. K.를 해 버렸다. 그는 그의 손으로 길러낸 한류 스타들의 이름만 나열하는 데에도 한참이 걸리는 자타 공인 히트 제조기였다. 사람 보는 안목이 탁월한 그의 눈에 채은은 옥석이었다. 지수는 그를 믿는 게 아니었다고 사흘 밤낮을 덤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가능성이 있다는 준기의 말에 채은은 열일곱 살이던 그 해부터 단역배우를 하기 시작했다. 준기의 실력이라면 비중 있는 조연뿐 아니라 주연 자리를 물어다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혜택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지수의 조건이었다. 비중 있는 첫 역할은 무조건 채은의 힘으로 따내야 한다는 조건이었고 3년 안에 그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깨끗하게 맘을 접기로 약속했었다. 약속한 3년이 얼마 남지 않아 채은은 그 어느 때보다 초조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지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불합격인 모양이었다. 채은은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불쌍한 정채은. 아윽. 서율 오빠. 아흐. 진짜. 지수 언니. 나 정말 그만둬야 해? 서율 오빠하고 연기 한번 해 보는 게 내 평생소원이라는 거 언니도 잘 알잖아. 사장님 능력도 좋으신데 나 역할 하나만 따 주면 안 돼? 나보다 늦게 들어온 수진이도 사장님이 힘써서 역할 따줬잖아. 나 수진이보다 연기 잘해. 언니도 알잖아. 어?”'채은이 측은지심을 유발하며 애교를 부렸지만 지수는 ‘절대 안 돼!’의 표정을 고수했다.'“아, 알았어. 그럼 1년만. 딱 1년만 더 해 볼게, 어? 나 진짜 연기 잘하잖아. 자신도 있어. 드림 월드? 다들 눈들이 삐었어, 진짜. 나 같은 인재를 못 알아보고. 나 같은 사람이 배우가 못 되는 건 우리나라 영상 산업의 지대한…….” '“너 소원 풀었다.”'“어?”'채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수를 바라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