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임을 알리는 등이 걸린 집을 한 청년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 속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청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녀의 소식을 전해 듣고 급하게 서울에서 내려왔지만, 그는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려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한참을 제자리에 서있던 짧은 머리카락의 청년은 무거운 다리를 들어 걸음을 옮겼다. 막 대문을 지나려던 청년의 귀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때였다.'“불쌍한 것. 세상천지 저 불쌍한 것 혼자 남아서 어쩌누.”'“그러게 말이야. 저 넋 나간 것 봐.”'“화우 아비는 죽은 거야?”'“글쎄. 지금껏 화우 엄마가 입 꾹 다물고 있다가 갔는데 어찌 알아.”'상갓집임을 알 수 있는데도 여느 곳과는 달리 적막이 흐르고 동네 사람들의 수다만이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한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화우 엄마, 작은 마누라라는 말 있었잖아, 왜?”'“그래. 나도 들었어. 무슨 재벌가 남자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아냐. 나이 많은 남자라고 하던데?”'“뭐 하는 거여! 여가 지금 어디라고! 저 불쌍한 것 앞에 두고 그런 말이 하고 싶어!”'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별장지기로 있는 준호 엄마라는 사람이 수다를 떨어대는 여자들에게 호통을 치고서야 동네 아낙들은 그제야 자기들이 뭐 때문에 여기에 모였는지를 인지한 것인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뿔뿔이 흩어졌다.''작은 나무대문 밖에 기대어 섰던 청년은 아픈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지금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죽은 이에게 수모를 주었다. 어린 소녀 혼자 지키는 상갓집에서 말이다. 천천히 벽에서 등을 떼어낸 청년은 작은 대문을 넘어 조용히 들어섰다. 작은 집인데도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상갓집은 적막했다. 그나마 있던 이는 수다를 떨던 동네 아낙들이 다였다. '청년이 들어섰지만 아무도 그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년은 나무 마루 위에 차려진 빈소를 바라보다 그 앞에 주저앉아 있는 어린 소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핏기라고는 다 빠져나가 버린 하얀 얼굴을 한 소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녀의 눈은 먼 기억 속을 헤매는 것처럼 초점이 없었다. 통통하게 붙어있던 볼 살이 쏙 빠져버린 소녀의 얼굴은 그가 기억하던, 마냥 어리고 천진하던 어린 꼬마가 아니었다. 이제는 아픔을 아는 소녀가 되어버린 아이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속에서 자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소녀에게 ‘엄마’라는 사람이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잘 아는 그로서는 소녀의 슬픔을, 절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도 겪었던 일이니까. 소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곁에는 동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이었던 가족이 떠난 아픔은 열네 살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고 절망이었으리라.'“꽃비야.”'“…….”'“꽃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