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이른 오전만 해도 화창한 날씨였다. '강희는 대합실에서 나와 원망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꾸물꾸물한 것이 아무래도 기어이 비가 오고야 말 것 같았다. '“아짐씨. 암만혀도 비가 또 올란갑네요잉? 으미, 미처부리겄네잉. 나가 오늘은 꼭 이 배를 타야 쓰것는디, 배가 못 �린韜� 벌써 삼 일째 여그 요로코롬 있당께요. 나가요. 딸년보러 서울까정 갔다왔는디 여서 이라고 막혀부렀당께. 아짐씨는 어디로 가요? 나는 저그 가거도로 가는 길인디.” '두 손 가득 보따리를 든 중년의 여자가 팔꿈치로 강희를 툭 건드리자, 안 그래도 짜증이 올랐던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줌마. 저 아줌마 아니거든요?”'“엄메? 아니면 아닌 것이지 뭐땜새 성질까정 낸당가. 날도 궂은디 저 선글라스는 또 뭐래야.”'아줌마가 투덜거리든지 말든지 강희는 등을 돌려 매몰차게 대합실 안으로 들어왔다. 기분도 죽여주는데 아주 날씨까지 같이 죽을 쓴다싶다. 크지 않은 대합실에는 지친 사람들이 여기저기 늘어져 지루한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며칠 내내 내려져있던 파랑주의보가 간신히 해제된 탓으로 대기인원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아, 발이야.”'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애초에 이런 먼 길을 오면서 실크원피스에 마놀로 블라닉의 7cm짜리 스트레토 힐까지 신고 나선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강희는 찝찝한 얼굴로 누렇게 때가 낀 대합실의 플라스틱 의자를 내려다보다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전 몇 개를 밀어 넣고 기계적으로 커피 자판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 때, 핸드백 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응.”'[남강희. 너 지금 어디야?]'친구이자 병원 동료인 박희라였다. '“나? 여기 팽목항.”'[팽목항? 그게 어딘데?]'“어디라고 하면 니가 알긴하고? 지도를 딱 펴. 그래서 우리나라 제일 아래쪽을 딱 찍으면 거기가 팽목항이야.”'[아아, 배타는 항구? 그러니까, 그런 델 니가 왜 가 있냐구? 이참에 새우잡이 배라도 타려고?]'“그걸 농담이라고 하니?”'[헤헤, 안 웃겼어?]'“박희라 양. 내가 지금 네 썰렁한 농담에 같이 웃어줄 기분이 아니거든요? 할 말 있음 빨리 해라.”'[아유, 계집애. 까칠하기는. 그냥 뭐하나 궁금해서 걸었지. 병원까지 팽개치고 거기까지 가서 뭐하는 건데?]'“원장이 그만두라니까 나온 거지. 내가 팽개쳤어?”'[그러게 왜 괜히 같이 싸워서 일을 더 크게 만들어. 자존심이 밥 먹여주니? 원래 강 마녀가 성격이 좀 다혈질인 거 그동안 그렇게 겪어 놓고도 몰라? 사정이 어떻게 된 거라고 차라리 차근차근 말을 하고 설득을 할 생각을 해야지. 원장이 펄펄 뛴다고 너까지 발끈해서 같이 싸우면 어떡해. 원장, 말은 안 했지만 뒤에 네 사정 다 듣고 은근히 후회하는 눈치던데 못이기는 척 전화라도 한번 넣지 그래?]'“미쳤니. 그 꼴 다 보고 다시 거기 가서 일하게? 됐다 그래라.”'[어련할라고.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승준 씨, 그 인간 부인한테도 그래. 그쪽에서도 네가 너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으니까 더 분해서 그러는 거 아냐. 그럴 때는 그저 나 죽었소, 하고 바싹 엎드려 있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