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호텔 커피숍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많은 사람들로 평소와는 달리 조금 소란스러웠다. 그중의 대다수가 선을 보는 젊은 남녀들이었다. 한껏 차려입고 나와 방긋방긋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영은의 한숨이 더 깊어졌다. 조금 있으면 낯선 남자 앞에서 저 여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오늘 이 약속은 영은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여러 번 거절을 했지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영은의 말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동생 지선의 행동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원망스러웠다. ''‘서로 얼굴은 모르고 만나는 자리니까 부담가질 필요는 없는데, 내 이름으로 나가는 거니까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줘. 제발 촌티 좀 내지 말고 옷이라도 한 벌 사 입던가. 대명그룹 기획실에서 근무한대. 그 회사 이사 정도라면 모를까, 나한테는 조금 모자라지만 언니한테는 넘치는 남자일지 누가 알아? 아주, 근사한 남자가 나왔으면 좋겠다.’''지선이 선심 쓰듯 이 자리를 넘겨주며 던진 말이었다. 하긴, 제일 한심한 건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곳에서 커피 잔을 들어 반쯤 식은 쓰디 쓴 블랙커피로 마른 목을 축였다. '“……이지선 씨?”'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했던 영은은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번개를 맞은 듯 제자리에 멈춰버렸다. 영은은 주변이 하얗게 바래지며, 남자의 모습만 부각되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환각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호텔 로비 커피숍으로 들어선 명우는 빠른 동작으로 실내를 훑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시계는 정확하게 오후 두 시, 그들의 약속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상대가 안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철저한 것이 몸이 밴 그답게 카운터에 확인을 부탁했다. 여자의 이름을 대자 손님 명단을 보고 있던 직원이 친절하게 웃음을 아끼지 않고 대답을 했다.'“그 손님은 이미 와 계십니다. 저쪽 창가 자리입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됐습니다, 내가 가죠. 고맙습니다.”'살짝 손을 들며 거절하는 명우의 행동이 건방져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근사한 외모에 눈길을 주던 종업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