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두, 조금 눅눅하다 싶더니 역시나 비가 내렸다. 집을 나설 때 이럴지도 모른다 생각은 했었는데, 귀찮아도 되돌아가 우산을 가져왔으면 좋았을걸. 집에 갈 땐 어쩌나……. 지연은 강의실 책상에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금방 그치지는 않을 양인지 안개까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게, 한 차례 지나갔다 생각했던 장마가 다시 오는 모양이었다. 쏴, 비는 한층 더 기세를 키웠다. 쏴쏴, 쏟아지는 소리는 분명 시원스러운데 왜 이리도 청승맞게 느껴지는지. '“아.”'지연은 한숨을 내쉬고 풀썩 책상에 엎드렸다. 3년 반, 해바라기 졸업의 뜻을 품고 신청한 여름 계절 학기. 참 재미없다. 아직 수업 시작하려면 20분이나 남았는데, 그놈의 버스는 오늘따라 신호도 안 걸리고 잘도 달리더라니. 지연은 머리를 모로 돌려 팔뚝 위에 얹고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아는 사람도 없고, 시간은 남아돌고…….'“지루하다.”'교재는 있으니 예습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그녀는 그다지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저 학점 잘 주는 교수님을 찾아 이냥저냥 학점 받아 하루라도 빨리 졸업하고 싶어 안달하는 약삭빠른 범인(凡人)일 뿐. 덜덜덜, 손을 떨어 보고 덜덜덜, 발을 떨어 봐도 지루함은 가시지 않았다.'“에이.”'지연은 작게 뱉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차라리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는 게 나을 듯했다. 밖은 생각 외로 시원했다. 그녀는 현관 가장자리로 다가가 살며시 등을 기댔다. 어느새 빗줄기는 한결 약해져 있었다. 지연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어트렸다.'무시로 떨어진 빗방울들이 바닥에 탁 부딪혔다 튀어 올랐다. 마치 한 방울 톡 떨어트리면 둘레에 방울져 튀어 오르던 언젠가의 우유 선전처럼 사방으로 튀어 번지는 빗방울들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연은 한참 동안 그 모양을 응시하다가 작게 코를 벌름거렸다. 빗방울에서 어쩐 일인지 흙냄새가 나는 듯했다. '바닥은 흙이 아니라 시멘트인데 어째 냄새는 흙냄새일까. 내가 잘못 맡았나? 그녀는 다시 한 번 코를 벌름거렸다. 공기 중에 있던 먼지가 씻겨 내려온 건가? 계속되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미간을 접는데, 맞은편 건물 입구에 있는 새파란 자판기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새파란 사이다가 떠오르고 동시에 강렬한 목마름이 맹렬하게 솟아나 뇌리를 채우고 있던 잡스런 의문들을 깡그리 몰아냈다. 지연은 벽에서 몸을 떼고 냅다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이슬 맺힌 캔 사이다를 들고 수업이 있는 건물로 돌아왔다. 우산 없이 약 20미터 정도를 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빗줄기가 가늘어 머리나 옷은 그다지 젖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화는 조금 눅눅했다. 중간에 물웅덩이라도 밟은 모양이었다. 그다지 효과는 없겠지만, 그래도 물 좀 떨어지라고 발을 차듯이 걸으며 음료수의 풀 탭을 따 입으로 가져갔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알싸하고 시원한 액체가 속까지 확 뚫어 주는 느낌이었다. '지연은 세 모금 만에 한 캔을 다 비우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자마자 눅눅한 신발을 벗었다. 이대로 신고 있으면 냄새가 날 테니 수업 중에라도 말릴 요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