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은 이혼녀가 됐다. 그녀는 매일 집에 웅크리고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전화가 오지 않을까 벨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하지만 끝내 그는 연락하지 않았다.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덤비며 싸웠지만 그는 허무하게 물러섰다. 붙잡지도 않았다.'‘미련 없니?’'자신에게 연거푸 물었던 질문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혼자 묻고 대답을 상상하는 미련한 짓이었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에 대한 상상은 가지에 가지를 치며 뻗어갔다. 차라리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대답해줄 사람은 곁에 없다. 그저 의미 없는 질문을 해대는 그녀만 있을 뿐. '스스로 가정을 박차고 떠나와 버렸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어 구명줄처럼 잡고 있던 핸드폰. 손에 땀이 차올랐다.'이혼하고 열흘이 지났다. 그의 집을 나와 친정이라고 불렀던 곳에 돌아왔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이 침통한 표정의 친정어머니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했다. 자신의 탓 같아 아는 척하지 않고 외면했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낯을 부딪치며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방 밖으로는 나가고 싶지 않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무료함을 느낄 땐 멍하니 앉았다가 가슴이 답답해지면 방 안을 서성거렸다.'“나와, 밥 먹어.”'문도 열지 않고 밖에서 윤 여사가 힘없이 말했다. 꼴도 보기 싫은 모양이다. 정작 피한 것은 자신이지만 서운했다. 모친의 마음을 모르진 않았다. 하긴 그렇게 말리고 또 말렸는데 그녀가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결국 걱정대로 짧은 시간 결혼에 실패한 여자가 되어 식구 모두를 아프게 했다.'“나중에 먹을게요.”'“죽을래? 이혼이 뭐 대수라고! 그 인간들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모친은 대답을 기다리며 문 밖에 서 있었는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들렸다.''이혼에 합의를 한 그날, 진경은 손에 잡히는 대로 짐을 싸서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에 오기까지 그날 밤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았다. 끊긴 필름을 이어붙인 듯 생각났다, 암전처럼 검었다가 다시 생각났다. 이혼하자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그러자고 하던 그의 얼굴만 명료할 뿐이다. 친정으로 오는 길이 어땠는지, 그 때의 울분이 얼마나 깊었는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택시기사의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친정집의 주소를 말했나보다.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에 서자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저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의 품에 안기고 싶을 뿐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도망치는 사람처럼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화급히 초인종을 누르는 손길에 식구들이 얼마나 놀랄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미친 여자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인터폰을 확인하고 문을 연 윤 여사는 맨발인 채였다. 차마 무슨 일이냐는 질문도 잊은 채 한동안 진경과 윤 여사는 서로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이내 윤 여사가 넋을 잃고 서있는 진경의 팔을 급히 잡아끌며 이유를 물었지만 진경은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긴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