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지저귀는 아침, 온 집 안에 고성이 울려 퍼졌다.'“삼십만 원!”'거실 바닥이 부서질 듯 쿵쾅거리는 소리에 베개에 고개를 처박고 잠들었던 도영이 부스스 일어났다.'“뭐래? 뭐가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비몽사몽간에 중얼거림과 동시에 벌컥, 문이 열리고 진노한 아버지가 들어섰다. '“유도영, 너!”'“아, 아버지, 왜 그러셔?”'야구 방망이를 든 아버지를 본 도영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러자 석준이 요금 명세서를 휙 던지며 소리쳤다.'“야, 이놈아. 휴대폰 요금이 삼십만 원이 뭐냐! 내 이놈의 자식을 그냥!”'‘일요 야구회’의 자칭 4번 타자를 자랑하는 석준은 특기를 살려 그녀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아버지, 이건 반칙이에요, 반칙. 나 아직 잠에서 덜 깼단 말입니다요!”'하지만 그녀는 잠에서 덜 깼다는 말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야구 방망이를 피해 잽싸게 방을 빠져나갔다.'“이놈의 자식이! 입만 나불나불, 아비 등골 빼먹을 놈이지, 오늘 아주 끝장을 보고 말 테다.”'몇 달 동안 벼르고 별렀던 석준의 분노는 화산 폭발보다 강력했다.'석준의 외동딸, 도영의 나이 올해로 이십칠 세. 세트 디자이너라는 허울 좋은 직업이 있지만 어찌 노는 날이 더 많다. 남의 집 딸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거울을 들여다보고 요리조리 예쁘게 치장을 하며 데이트다 뭐다, 부모가 딸자식 얼굴 볼 겨를이 없다는데 도영은 일이 없는 요즘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끼고 앉아 낄낄거렸다. 때로 그마저도 싫증이 나면 집 바로 아래층, 석준이 운영하는 비디오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비디오를 봤다. 어찌나 어두컴컴한 음지로만 찾아드는지 도영의 몸에서 곰팡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남들이 들으면 군내 나는 아들을 키운다고 착각할, 석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딸자식이다. 오로지 저놈 하나만을 바라보며 십칠 년 홀아비 생활을 견뎌냈건만. 아이고, 복장이야!'“더는 참지 않을 테다!”'“헉!”'석준은 거실 소파를 사이에 두고 선 도영을 보며 방망이를 치켜 올렸다. 그러자 도영이 소리쳤다.'“아버지, 야구 방망이로 때리면 외동딸 죽어요.”'그럴 때만 딸자식! 저걸 딸이라고 생각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말이라도 못하면 속 타는 게 좀 덜할 텐데, 죽어도 말대답이다.'“진정하시고 우리 말로 해요, 말로!”'“이놈아, 다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