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는 숲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숲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이곳은 어디일까.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똑같은 모양의 나무들뿐. 어떻게 이곳으로 왔는지, 돌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영영 숲에 갇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마음속에 들어찼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흥겨운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가마 한 대는 너끈히 다닐 수 있을 만큼의 큰 길이 숲에 생겨났다. 그리고 길의 저 끝에서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한 무리의 광대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무에가 그리 좋은지 저마다 들고 있는 꽹과리와 장구, 징을 흥겹게 쳐댔다. 이대로 영영 길을 잃고 헤매게 될까 걱정하던 은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이보시오, 이보시오.”'은서는 반가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했다. 마치 은서가 보이지도 않는 듯, 오직 행렬의 맨 끝을 따라오는 붉은 가마만을 바라보았다. 은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좇아 가마로 눈길을 옮겼다.'울긋불긋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으로 한껏 장식된 가마는 가마꾼들의 어깨춤을 따라 함께 들썩였다. 가마를 따르던 어린 꼬마 하나가 가마 문을 슬쩍 열었다. 그러다 이내 제풀에 놀라 까르르 웃으며 달아났다. '대체 뉘의 혼례길인데 이리들 야단일까?'은서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녀는 천천히 가마 쪽으로 다가갔다. 감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마 속에 어떤 이가 앉아있는지 호기심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말로 이상하였다. 한 발짝 한 발짝, 가마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가슴이 쿵쾅쿵쾅 사납게 날뛰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그녀의 손끝을 저리게 만들었다. 괜스레 입 안이 바싹 말라갔다. 은서는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는 아까 어린 꼬마가 했듯이 몰래 가마 문을 살짝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뉘일까? 대체 뉘일까?'호기심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눈이 돌연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가마 속에 앉아있는 여인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얼굴에 곱게 분칠한 어머니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연지곤지에 진주와 옥이 알알이 박힌 화관을 쓰고, 목단문의 금박으로 장식한 붉은 댕기를 가슴 앞으로 길게 늘어뜨린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장엄하고 아름다워 도리어 낯설게만 느껴졌다. '“어머니…….”'은서가 화령을 불렀다. 내내 새치름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던 화령이 그녀의 부름에 눈을 들어올렸다. 새까만 머루 같은 눈동자가 은서의 두 눈에 들어와 박혔다.'“은서야.”'화령은 은서를 향해 아이처럼 하얗게 웃었다. 어머니가 저렇게 환하게 웃으셨던 적이 있었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령의 웃음에 은서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