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겠니?”'라고 몹시도 참담한 표정으로 내게 묻던 언니, 그 표정에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했을까. '“……언니, 해야만 하는 거겠지?”'되도록 침착하게 대꾸하려 했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어찌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알아챘는지 언니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그래, 해야만 해, 란아.”'그것이 언니가 나를 위하는 일임을 안다. ‘적룡’에서 18세가 되도록 임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는 나밖에 없다. 그것은 모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막내를 가엾게 여긴 엄마와 큰언니의 배려임을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음도 안다. 더 미뤘다간 발붙일 자리조차 잃게 될 테니까. 그리고 발붙일 자릴 잃게 된 조직원의 말로가 어떤 건지 또한 알고 있다. 그것은 수장의 직계비속이라 할지라도 예외 없는 법칙이었다.'“가겠어.”'“잘 할 수 있을 거야. 실전 경험이 없다 해도 넌 우리 ‘적룡’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니까. 네가 돌아오면 어머니와 내가 네 자리를 확고히 할 거야.”'이대로 멀리 멀리 사라져 버리면 안 될까?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치솟는 물음, 애원. 하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들. 알고 있다. 대대로 여자가 수장이었던 ‘적룡’에서 수장을 보필하는 자매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애석하게도 이런 내 삶의 무게는 버겁지만 내 가족과 조직의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임무를 이행할 수밖에 없음도 안다.'“……동트기 전에 다녀올게.”'겨울이라 밤은 길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누구보다 완벽하고 빠르게 처리하겠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서는 나를 언니가 불렀다.'“란아, 조심해야 한다.”'걱정 어린 언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문을 나섰다. 후, 하고 내뱉는 한숨에 하얀 입김이 그려졌다. 차갑게 언 손끝처럼 심장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늘 지니고 다니는 품안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서슬 퍼런 날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연습은 결코 실전과 같을 수 없다. 실제 사람을 베는 것은 공포였다. 약하게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단단히 감아쥐며 나는 호흡을 골랐다. 드디어 신고식이 끝났다.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돌아가려 걸음을 떼었다. 질퍽, 푹신한 카펫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느낌에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 생소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고개를 숙였다. '눈을 뜬 채 널브러져 있는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생을 잃은 눈에서 원망을 읽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망자의 눈을 넘어 가슴을 찔러 왔다. 그래, 결코 저 눈을 회피해선 안 된다. 이것이 내 평생의 업이 될 테니까……. '가라앉은 시선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떼었다. 감정을 갈무리하고 이성을 잡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듯 금세 토기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