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불판에 삼겹살을 올리다 이번 연극의 무대감독을 맡은 김성환이 생각났다는 듯이 선배인 박치우에게 퉁을 주었다.'“왜 그렇게 대사를 씹어요?”'“너도 내 나이 돼 봐라. 침 나오고 발음 꼬이고 죽겠다.”'“하하하. 그게 왜 나이 탓입니까? 신 선생은 발음만 좋던데. 안 그래, 엄지공주?”'“네? 아, 네.”'“오늘 따라 우리 공주님이 왜 그러실까? 또 염 선생한테 꾸중이라도 들었나?”'나이 탓에 대사가 꼬인다던 박치우가 소주를 들이켜며 넋을 놓고 있던 지우에게 물었다. 하지만 지우는 작게 ‘그냥요.’라고 어물쩍 대답을 흘리고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신경은 자신의 등 뒤 테이블에 앉은 차성혁에게로 쏠려 있었다. '“……차 실장님 생각은요?”'“글쎄요. 저는 문외한이니 열외로 해 주십시오.”'언제나 부드럽게 힘을 실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왁자한 고기집의 모든 소음을 가르며 흘러나왔다. '분명, 여러 사람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것이다. 지우 테이블에서도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두어 명이 고개를 돌렸으니까. 지우 또한 그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고 싶은 걸 겨우 참고, 그저 기름지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만 바라보기 위해 등을 꼿꼿이 세웠다. '성혁의 말이 끝나고 웃음기가 묻어나는 여자의 음성이 뒤를 이어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아마도 성혁이 데려온 미인이 재치 있는 답변을 한 모양이었다. '지우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천천히 뒤집었다.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끝마치고 객석에 불이 들어왔을 때 성혁의 옆자리에 여자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지우는 조금씩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고약한 성미이며 고질병이다. '어린 시절의 지우는 정말 조용한 아이였다. 말이 많은 것도 떼를 쓰는 것도 없고 학교에서도 마치 인형처럼 앉아 있다 오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한 번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말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도 다른 아이들처럼 떼를 쓰며 울고불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성미를 못 참고 순식간에 열이 오르는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