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신록이 한창인 8월. 윤기 흐르는 푸른 잎들 사이에 오래된 나무 간판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나무 둥치를 얇게 잘라 인두로 태워 쓴 글씨는 비바람에 마모되고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써 읽기조차 힘들었다. 간판 위엔 애처로울 정도로 희미하게 ‘다원(茶園) 차와 식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한줄기 바람이 불자 나무 간판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안간힘을 다해 여행자들을 호객이라도 하듯. '간판의 뒤에는 그보다 더 낡은 고가가 서 있었다. 고가를 둘러싼 낮은 돌죽담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그러나 위용이나 위엄보다는 망한 왕조의 쇠락한 성벽만큼이나 비감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오히려 더 위풍당당해 보이는 건 긴 담장 앞에 주차한 서너 대의 번쩍이는 고급 승용차였다.'고가 안의 마당에는 열 살 남짓의 세 소녀들이 종알거리는 중이었다. 흰 얼굴에 말쑥한 차림을 한 소녀들은 낡은 한옥을 기웃거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들에게 흙냄새 풀풀 풍기는 낡은 고가는 원시적인 유물일 뿐이었다.'툇돌을 밟고 마루로 올라서려던 소녀들은 선뜻 신발을 벗지 못했다. 깨끗한 흰 양말이 더러워질까 봐서였다. 서로 눈을 찡긋하는 것으로 무언의 합의를 한 그녀들은 신을 신은 채 마루에 올랐다. 그리고 마루 옆의 격자가 달린 문을 밀고 그대로 방까지 들어갔다. 노란 기름종이가 깔린 방 안은 낡은 앉은뱅이책상과 반다지가 가구의 전부로 무척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옷걸이에 옷이 걸린 것으로 보아 누군가 살고 있긴 한 모양이다.'“남의 방에서 뭐 하니?”'그 소리에 소녀들은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왔다. 잘못한 게 있던 터라 우물쭈물하는데 앞에 서 있는 것은 자기들 또래의 소녀였다. 숱 많은 검은 머리를 질끈 하나로 묶고 게스(guess)가 아닌 제우스(geuss)가 커다랗게 쓰인 티셔츠와 무릎 나온 청바지를 입은 시골 소녀. 말쑥한 소녀들은 놀란 것도 잊고 피식피식 웃었다.'“너 여기 살아?”'“그런데?”'시골 소녀, 원영은 까만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대답했다.''''''1.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 그 남자의 안티''2. 잊혀진 여자''3. 매일 낯선 얼굴''4. 선율 속에서''5. 물의 시간, 바람의 시간''6. 사냥꾼과 채집가''7. 처음이고 마지막인 마음''8. 사랑, 그 못된 버릇의 시작''9. 나의 꽃''10. 잃어버린 그녀''11. 모진 말로 널 할퀴다''12. 내 어여쁜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