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진!”'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창유를 만났다. 서점에서 만나다니, 소문으로는 절대 잡히지 않는 바람남으로 살고 있는 그가 그래도 현실은 착실히 살고 있는 거 같아 다행이기도 했다.'“뭐야? 너도 문제집 사러 왔어?”'거의 1년 만에 보는 건대도 하진은 편하게 이야기했다. 창유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가출했다 돌아온 가족을 반겨주듯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며 어색한 시간의 공백을 상기시키지도 않았다.'“어. 친구랑 같이. 넌 혼자야?”'“어. 근데 설마 여자친구?”'“내가 그런 거 키우는 거 봤어.”'역시나 소문만 무성한 인기남이다. 창유가 고개를 돌려 서점 안을 둘러본다. 같이 왔다는 친구를 찾는 거 같았다. 하진도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서점 안 많은 사람들 중 하진이 창유의 친구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알았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창유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하진은 그제야 찬찬히 오랜만에 만난 창유를 바로 보았다. 1년 사이에 보니 키가 훌쩍 커버렸다. 이젠 하진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 사이 운동도 좀 했는지 몸에 근육도 붙었고, 어깨가 넓어졌다. 한번 안겨보고 싶다는 상상을 품게 만들 정도로. 턱선이 더 단단해지고 눈매도 어른스러워진 게 여자애들이 왜 가만 안 놔두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창유는 그녀가 없던 곳에서 참 많이 자라 있었다. 낯선 남자의 향기가 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를 대하는 말투는 중학교 때와 똑같았다.'“잠깐 한눈판 사이에 녀석이 사라져 버려서 찾고 있는데, 네가 보이잖아.”'창유는 그녀를 신뢰하고 있다. 아무리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도 자신을 반겨줄 것이라는 걸.'“버림받은 거 아냐?”'창유가 밉지 않을 정도로 하진을 쏘아본다. 하진은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받아내었지만, 사실 창유가 반가웠다. 자신도 믿기 힘들 정도로.'“아! 저기 있다.”'창유가 친구를 찾은 듯 예술 서적 코너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머뭇거림 없이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다 다시 뒤돌아 하진에게 다가왔다.'“왜 안 와?”'가만히 서 있던 하진은 잠시 당황한다.'“뭐? 내가 왜?”'“오랜만에 만났잖아. 같이 밥이나 먹어.”'뭐, 창유 혼자라면 그러고 싶지만 모르는 이가 끼어 있다는 게 걸렸다.'“일행 있다며.”'“무슨 상관이야. 내 친구가 네 친구지.”'말은 쉽다. 하진은 억센 성격 탓에 모르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창유를 다시 만난 게 정말 반가웠기에 하진은 못 이기는 척 창유의 뒤를 쫓아갔다. 창유의 친구라는 남자애는 미술 서적이 있는 곳 구석에 서서 책을 보고 있었다. 책 커버가 황금빛으로 번쩍번쩍하는 것이 비싸 보이는 책이라는 게 하진이 느낀 전부였다. 책 위로 고개를 숙인 남자애의 얼굴 앞으로 흘러내린 까만 머리카락이 비단 물결처럼 윤기가 흘렀다.'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했던가. 창유와 같은 부류였다. 잘난 겉모습으로 관심을 끌고, 무심한 듯한 분위기로 애를 타게 만드는.'“산하야.”'푸른 솔 향이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산하, 라고 하진은 저도 모르게 작게 따라 말했다. '창유의 부름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면서 벌써 어른이 되어버린 듯한 눈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산하라는 이름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눈빛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기가 청신했다. 그 남자애의 주변에는…….'하지만 하진은 도리어 숨을 참고 만다. 아주 잠시. 남자애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일었던 미미한 현기증이 가실 정도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