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년. 백제.' 한차례 비가 퍼붓고 난 후의 산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름을 자랑했다.' 시원스레 뚫린 숲길을 따라 말을 몰아가는 소년과 사내. ' 아직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어리지만 사내로서의 골격을 형성해가고 있는 소년 화랑 김치후, 그 옆의 사내는 치후의 그림자인 무관이었다.' 그들은 지금 전국각지를 순례하고 있었다. 명목상 순례였지만 따지고 보면 백제와 고구려의 민심을 살피는 것도 포함되어있었다. 머지않아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아들에게 돌아가는 정세를 보여주려는 아버지 유검의 배려였다.' “괜찮습니까?”' 무관이 치후를 향해 물었다.' “괜찮다.”' 그들은 서라벌을 떠나 이틀을 한시도 쉬지도 않고 달려 왔다.' 말위에 앉아 있는 치후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소년의 강인한 이마와 입술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무관은 그런 치후의 얼굴을 뜯어보며 입을 열었다.' “치후님.”' “왜 그러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백제와 고구려를 둘러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랬지요. 우린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새로운 세상?”' 무슨 뜻인지 몰라 치후는 되물었다.' “조만간 이 땅은 신라의 것이 될 것입니다.”' 치후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다음 대의 최고화랑이 되십시오. 치후님은 누구보다 현명하고 통솔력이 뛰어나십니다. 신라의 모든 귀족 화랑들을 제치고 최고의 화랑이 되어야합니다.”' “…….”' “머지않아 힘 있는 국가가 힘이 없는 국가들을 집어 삼키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치후님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위한 주춧돌이 되십시오. 신라를 주변의 국가들에게서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화랑이 되시는 것이 유검장군께서 치후님께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치후님께서 그렇게 해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