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말썽이라도 부려서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면 타도 좋아요.”'아량을 베풀고 있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그런 그의 말투에 나은은 놀란 새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납골당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거나 이유를 묻지 않는 그의 행동이 의아하게 생각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 ‘타도 좋아요.’ 라는 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가 그녀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고 있었다. '“괜찮아요.”'지금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울 상황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녀는 선택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설마 산책 중이었던 건 아니겠죠?”'분명 그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에는 칙명을 공표하는 사신의 말투처럼 어색하고 거만한 것이었지만. '“물론이죠.”'나은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새된 목소리로 재빨리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손을 들지 않았었나요?”'“아, 그건 아는 사람의 차로 착각해서 그랬던 것뿐이에요.”'나은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자신의 처지가 생각처럼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다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반항적인 태도로 대꾸했다.'“누가 오기로 했나보군요?”주안이 그녀의 모습을 훑어보며 물었다. 그의 눈에 그녀는 분명 한심한 몰골로 보이고 있을 것이다. 나은은 얼굴을 찌푸렸다.'“네.”'“훗.”'그 순간 그가 짧은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바쁘실 텐데, 가시던 길 계속 가세요.”'“약속 장소를 시내로 바꾸는 건 어떻겠어요?”'그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혹시 이 남자 자신의 아량을 쉽게 거절하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인 사람일 것일까?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그녀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대답이 정확한 발음으로 매끄럽게 그녀의 입술을 탈출해 버렸다.'“오는 길에 일기 예보를 들으니 오늘 밤에 이쪽 지역에 소나기가 온다더군요.”'주안이 거만한 말투로 다시 입을 열자 그녀는 마지못해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이토록 껄끄러운 인연만 아이었더라도 그녀는 분명 매우 고마운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을 것이다. '“내말 듣고 있어요?”“정말 저를 도와주실 생각이시라면 그냥 못 본 척 떠나주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꽉 잠긴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을 하면서 나은은 자신이 바보천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안을 만나고 온 날 하필 그의 형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고문을 당하는 것 이상의 고역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여전히 어리석군요.”'이어지는 주안의 말에 나은은 우아하게 어깻짓을 해보였다. 자신이 분개를 한다면 그는 분명 그녀의 그런 모습을 즐길 것이다. 나은은 짜증을 감추고 아까보다 더 담담하고 절제된 어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만 가주세요. 일행이 올 거예요. 곧이요.”'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은 대부분 불쾌함과 혼란스러움 이었지만 그녀는 이를 갈면서도 싱긋 웃어보였다. '“좋도록.”'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