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감사했어요. 안녕히 가세요.”'“그게 답니까?”'“예?”'“겨우,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게 다냐고요?”'“그럼…….”'“다음에 언제 갚겠다, 시간을 내달라, 뭐 이런 대화가 오가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안 그래요?”'들어붓듯 쏟아지던 빗줄기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차 지붕으로 텅텅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소리도 많이 약해져 있었다. '아파트 정문까지 운전해 온 경훈이 하영의 제지로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웠다. 소지품을 챙겨서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며 건넨 하영의 인사말에 경훈이 사뭇 볼멘소리를 했다. '가로등 불빛이 어스름 비쳐드는 차 안에 앉은 하영이 몸을 돌려 말간 눈으로 경훈을 바라보았다. '“저, 결혼했다고요. 유부녀에요. 남편이 있다는 뜻이라고요.”'“알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잖습니까?”'“그럼 왜 그렇게 저를 만나려고 하시는 거죠? 제가 남편 말고 민 사장님을 불륜 상대로 보면 좋으시겠어요? 그러길 바라시나요?”'“그, 그건…….”'이혼을 앞두고 있다는 진환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진환에 대한 하영의 신뢰를 알고 있는 경훈이었기에 서둘러 혀를 깨물어 비집고 나오는 말을 막아버려야 했다.'“민 사장님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이 민 사장님 같은 분이 저한테 관심을 가져 주시니 정말 감사하고요. 하지만 관심이든 사랑이든 받아들이는 쪽에서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본래의 취지와는 많이 동떨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 사장님의 관심은 오늘까지만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식사 감사했고요, 안녕히 가십시오.”'또박또박 거침없이 자신의 말을 쏟아놓고 하영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우산을 활짝 펼쳐들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파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