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무대에서는 맑고 청아한 음성의 소프라노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열창하고 있었다. 고전적인 실내장식과 함께 저녁 시간,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강남의 레스토랑은 그 외관과 실내에서 전해주는 웅장함으로 더욱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주방장이 특별히 추천한다는 메뉴를 앞에 두고 앉은 은혁과 하영은 별 다른 대화 없이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뒤늦게 결혼기념일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말없이 샐러드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하영의 말간 얼굴을 살피며 은혁은 그녀의 기분을 그렇게 추측했다.'언제부터인가 말수가 줄어들고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져 버린 하영을 생각하며 은혁은 자신의 주변으로 그만큼의 밝고 화사한 색채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오렌지색으로 타오르는 촛불이 하영의 하얀 얼굴을 한층 화사하게 비춰주었다. 가늘고 섬세한 얼굴선이 도드라지면서 길고 우아한 목선이 더욱 강조되어 보였다. 윤기 나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긴 때문으로 작고 앙증맞은 귓바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꿀꺽, 은혁의 입안으로 침이 고였다. '저도 모르게 하영의 작은 몸짓에도 자극을 받게 되는 스스로가 멋쩍게 느껴져 은혁은 황급히 앞에 놓인 물 컵을 집어 들어 반 이상을 마셔버렸다.'달그락, 하영이 조심스럽게 접시에서 손을 떼었다.'은혁의 행동을 식사가 끝났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은혁의 한쪽 눈썹이 올라가며 말없이 하영에게 물었다.'“……많이 먹었어요.”'정중한 몸짓으로 테이블에 다가온 웨이터가 접시를 치워갔고 이어서 정성껏 만들어진 디저트가 옮겨져 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대에서 열창을 하고 있는 소프라노의 세레나데가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그들의 테이블을 애절하게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유럽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레스토랑 건물을 우아하게 비추는 조명을 바라보며 서 있던 하영은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와 서는 귀에 익은 자동차 소리에 몸을 돌렸다.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나온 은혁이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하영을 확인했다. '단정한 걸음으로 차를 향해 다가가는 하영의 모습을 응시하며 은혁은 새삼 그녀의 여자답고 아름다운 자태에 입안에 침이 마르는 착각이 들었다.'결혼한 지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