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화 ''知己之友 - 초설(初雪) ''''''- 1 -''아침부터 잔뜩 흐리고 추운 날씨였다. 노인들이 하늘을 올려보며 눈이 올 거라 했다. 그 말대로 짙게 드리운 구름이 눈송이를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첫눈이다. 잠시 내리는 눈이 아니라 밤까지 계속 내릴 기세였다. 아이들이 눈을 맞으며 좋아라 뛰어다녔다. 어른들도 힘겨운 겨울나기 준비를 잠시 미뤄두고 내리는 눈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태풍이 지나고 난 뒤, 계속 가물었던 날씨였다. 그러니 물을 얻을 수 있는 눈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혜림원도 환자와 의생들이 잠시 밖으로 나와 내리는 눈을 맞으며 시끌벅적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눈에 미끄러져 다치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삔 곳에 바를 약을 많이 준비해야겠어.”'“삐기라도 하면 낫지요. 뼈라도 부러지면 고생이지요. 겨울 내내.”'“그야 그렇지요.”'의생들의 대화는 항상 다친 사람, 약, 치료방법에 관한 것뿐이다. 날씨에 따른 환자의 유형과 처방에 관한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순간의 휴식이었다. '“야이, 시발 새끼들아! 일 안 하고 뭐 하는 짓거리야? 썩을 잡것들이 숙주로 보낼 약 만들다 말고 뭔 짓인지? 그리 한가하냐?”'이유청의 호통에 죄다 입원실로 도망쳐 일을 하는 척했다. 이유청에게 걸리면 바로 독약실험재료가 된다는 것을 모두 아는 까닭이었다. '한가하게 눈 구경이나 하고 있는 의생들을 족치러 이유청이 씩씩거리며 진료당을 나왔다. 모두 걸리면 죽음이다, 여기고 자신이 걸리지 않기를 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눈 구경하던 환자들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유청이 황급히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쓰는 체 하고 있는 의생에게 다가갔다. 그 의생의 얼굴은 하얀 눈 못지 않게 새하얗게 변해갔다.'그때였다. '“이 의원님!”'유청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를 양갈래로 곱게 땋은 아민이 달려와 유청의 앞에 섰다. 여전히 남장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제법 소녀 티가 나고 있었다. '“뭐냐, 계집애야?”'아민이 발끈했다.'“제 이름은 계집애가 아니에요. 아민이라구요. 제 이름 기억하는 거 그리 힘드세요?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쇠한다고 하더니.”'“뭣이라?”'의생들의 유일한 구원의 손길인 아민이었다. 이유청때문에 의원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자들은 거의 쫓겨났다. 이곳에 남은 자들은 그나마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아민은 이유청을 제어하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적당한 시점에 나서 유청의 폭거를 막는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의생들은 숨어있던 몸을 슬쩍 일으켜 유청과 아민의 말싸움을 지켜보았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잖아요. 이 의원님도 이제 기억력이 떨어질 나이 아니세요? 그러니 제 이름도 기억하지 못 하시지요?”'“웃기고 있네, 요 꼬맹이. 네가 이름값을 하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계집애야. 나에게 네 이름을 불리게 하려면 이름값을 해라.”''''''제 36 화 - 초설(初雪)''제 37 화 - 위령제(慰靈祭)''제 38 화 - 회념(懷念)''제 39 화 - 연희(演戱) ''외전 - 그들이 설산(雪山)으로 간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