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일 황제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또렷했다. 그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어둠을 희생양 삼아 타오르기라도 하듯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마법사 정기 회의를 듣고 돌아왔더라면 수십 개의 촛불로 환하게 밝혀진 방이 그녀를 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몇 개의 촛불이 내는 희미한 빛과 창 밖에서 들어오는 가느다란 달빛이 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다연은 아직 자신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방 밖에 오도카니 서 있을 시녀들을 불러 방을 환하게 만들까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 분위기에 제 3자를 개입시키면 안 될 것 같았다. 오직 이스마일 황제와 자신, 단 둘만이 이 공간에 존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를 꼬집어낼 수는 없지만, 굳이 가져다 붙이자면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 고해성사-혹은 껄끄럽기 그지없는 ‘진실의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공간을 잠식하는 어둠조차 가르는 이스마일 황제의 선홍색 눈동자가 처음으로 두렵게 느껴졌다. 아니, 처음으로 두렵게 느껴졌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살기를 담은 그의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도 두려움은 느꼈으니까. 하지만 지금 오감을 자극하는 두려움은 분명 그때 느꼈던 감정과는 달랐다. '이런 식의 두려움은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다연은 그제야 그럴듯한 표현을 찾을 수 있었다. 똑같은 ‘두려움’이기는 하되 그 종류가 달랐다. 과거에 느꼈던 감정이 곧 터질 시한폭탄을 앞에 두고 있을 때의 심정이라면, 지금은 언제 터질 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을 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떠한 일이 언제 일어날지 알고 있을 때의 두려움과 일어난다는 사실은 알되 언제 일어날지는 알지 못하고 있을 때의 두려움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1분 뒤에 폭발할 시한폭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공포와 분명 터지기는 할 텐데 언제 터질지는 알 수 없는 시한폭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공포. 둘 모두 지극히 두려운 일이므로 어느 종류의 두려움이 더 큰지 논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때로는 둘 중 하나가 더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현재 그녀는 후자의 공포를 접하고 있었다.'“마저 말해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