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연회장을 빠져나가려던 아린은 맞은편에서 오던 남자의 모습에 옆으로 비켜섰고 남자 역시나 비켜서자 두 사람은 다시금 마주섰다. 주춤거리며 다시 옆으로 서자 그가 또다시 자신의 앞을 막고 있었다. 아린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훤칠한 키에 진회색 스트라이프 정장 차림의 꽤 잘생긴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고 은근 기분 나쁜 생각에 아린은 눈살을 찌푸렸다.'“비켜 주시죠!”'바지 주머니에 한손을 넣고 잠시 버티고 서있던 남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그녀의 앞에서 비켜서 주었다. 아린은 새침하게 그를 의도적으로 살짝 밀치고 비켜서 나갔다.''살구 빛 원피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작은 키에 아담한 체형의 그녀는 여전히 열다섯이었던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모양이다. 스쳐나가는 아린을 보며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강민준?”'서운한 표정으로 아린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민준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낯익은 남자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오랜만이다 현성아!”'“하하, 한국에는 언제 왔어?”'민준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현성은 반가움에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고 민준 역시 그를 강하게 안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 경영학 MBA과정까지 마치고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민준이었다. 물론 그사이 미국에 갈 때마다 만났었지만 현성이 회사 일을 시작하면서 1년 반 정도는 만나지 못했었다.'“왔으면 진작 연락을 했어야지!”'“이제는 태양 그룹 사장님이신데 함부로 불러낼 수 없지 않겠어?”'“자식! 그래도 네가 온다고 했으면 열일 제쳐두고 나갔을 거다!”'“그래서 연락 없이 온 거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고.”'현성은 민준의 말에 웃으며 연회장 안으로 그를 안내했다. '“근데 정말 어떻게 된 거야? 지난번 통화 할 때도 아무 말 없더니”'“회장님 호출이야.”'“우리 할아버지?”'“응.”'현성은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민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준 역시 이유를 알고 온 것이 아니라서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이따 뵈면 알게 되겠지.”'“어쩐지 불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