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베트남 가.”''커피숍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도록 창밖만 바라보던 영주는 진섭이 그 말을 하고서야 비로소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영주의 시선을 그렇게라도 받을 수 있는 이 짧은 시간이 진섭에게는 너무도 소중했다.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 이제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진섭은 영주를 보내줘야만 하는 이 자리가 너무도 힘들었다.'베트남 파견은 진작부터 나오던 말이었지만, 진섭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기로 했다고 했었는데……. '“자원했어. 어차피 가야 될 거면 일찍 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마침 상황도…….”'어찌된 거냐는 물음이 담긴 영주의 눈빛에 진섭이 답했다. 이제 웬만한 건 말이 아닌 눈빛으로도 알 수 있는 그들인데 이제 그들은 이렇게 이별만을 앞에 두고 있다.'그랬다. 이혼은 영주 자신에게도 진섭에게도 큰 상처로 남을 것이다. 서로가 절실해서 하는 이혼이 아니었다. 둘 앞에 놓인 이 상황을 둘 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때는 서로에 대한 사랑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거라 자신했었던 찬란한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때가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빛바랜 사진처럼, 아니 불에 타버린 사진처럼 재만 남았다.'지금 둘 사이는 앞에 놓여 있는 차갑게 식어가는 커피와 다를 바 없었다. 먹자니 식어버린 커피라 맛이 없고, 그렇다고 그냥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커피 같은 사이가 되어버린 그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진섭은 지금 앞에 앉아있는 영주가 자신이 사랑했던 그 영주인가 싶었다. 한때는 꽃처럼 아름다웠던 여인이었다. 그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늘 그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던 여인이었는데 이젠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손만 대도 부서져버릴 것 같다. '진섭은 더 이상 바싹 말라가는 영주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이혼을 선택했지만, 자신의 심장은 여전히 영주를 향해 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혼은 꿈에서조차 단 한 번도 바란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더 이상 영주를 붙잡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자꾸만 영주를 향해 달려가려는 심장을 달랠 길이 없어 이렇게 먼 길을 떠나려 한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떠나는 게 옳은 일일까?'“만약에 같이 가자고 하면 갈래?”'“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