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식탁에는 고요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묵묵히 밥을 다 먹고 일어나는 혁주 씨의 표정에는 오늘도 여전히 변화가 없다.''‘잘 먹었다는, 맛있게 먹었다는 말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해주면…….’''헛된 희망을 품고 지금까지 지내온 3년.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만 3년이 되는 오늘까지만. 숟가락을 놓고 출근 준비하는 혁주 씨를 도와주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갔다.''이미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 혁주 씨가 멈칫한다. 서랍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는 시영이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린다. 현관문 열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 있던 시영이 천천히 거실로 나온다.''“휴우, 이제 된 거야, 이제 된 거야, 흑흑흑…….”''아까와는 다르게 감정이 잔뜩 실린 얼굴이다. 천천히 집안 구석구석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저장하듯이 집어넣는다. 거실 커튼을 비롯해 소파에 놓여있는 방석, 쿠션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내가 만들고 완성했는데…….''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식탁 위를 정리하면서 마지막 남은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해 놓았다. 더 이상 손볼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거실로 나와 청소기를 손에 들고 청소하기 시작했다. 깨끗해서 더 이상 손 댈 것도 없는데, 아주 윤기가 나게 마지막 정리를 마친다. 이제는 서재차례. 하지만 오늘도 역시 문이 잠겨 있었다. 이곳은 나에게 금지구역. 결혼 한지 거의 3년 되었지만 한 번도 나에게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비밀의 방. 체념의 한숨을 쉬며 안방 쪽으로 몸을 돌려 들어갔다. 커다란 침대가 한가운데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침대 커버도 벗겨낸다. 새로 준비된 새 침대 커버를 씌워 놓고 벗겨낸 침대 커버는 차곡차곡 접어 가방에 넣는다.''‘이것은 내가 가져갈게요.’''3년간 이곳에 살았다는 흔적 하나하나를 지우듯 그렇게 하나 둘씩 없어졌다.''화장대로 발걸음을 옮겨 화장품 하나하나 휴지통에 버리고 서랍을 열어보니 혁주 씨에게 받은 패물들과 카드, 통장들이 밝은 빛을 내 뿜으며 서로 자랑하듯 늘어져 있었다.''‘이것들은 그냥 두어야겠다. 내 것이 아니니까. 내가 주인이 아니니까…….’''서랍을 닫으려는 순간 시영의 손가락 사이에도 반짝거리는 반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이것을 잊고 있었네. 결혼하고 단 한순간도 빼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것도 빼야 되는데…….’''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눈가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마저 빼냈다. 한순간에 간단하게 빠지는 반지를 손바닥에 놓고 가만히 움켜쥔다. 잠시 후, 손에 힘을 풀고 반지도 서랍 속에 집어넣고 닫는다.''‘이제 다 끝난 건가? 옷은 이미 다 정리했고, 빠진 것은?’''꼼꼼하게 모든 것을 챙기고 큰 트렁크 두 개를 들고 거실로 나온 시영이다.''트렁크 하나를 열고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들고 안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화장대 위에 올려놓는 손길이 떨린다.''‘이제 혁주 씨. 안녕……. 내가 이제 당신을 놓아줄게요. 다시 당신과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요. 미안하고 그동안 그래도 참고 살아주어서 고마웠어요.’''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하듯 트렁크 가방을 들어 올리며 현관 쪽으로 나왔다. 등 뒤쪽으로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거리는 시영이다.''“이제 정말 안녕이네.”''나지막하게 들리는 시영의 말이 왜 이리 애절하게 느껴지는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시영의 뒷모습이 왜 이리 외롭게 느껴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