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뭐 하니?”'“쭈쭈바 먹고 있다.”'하는 짓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호태는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과묵하게 대답했다.'“그러니까 쭈쭈바를 왜 여기서 먹고 있냐고.”'“쉬었다 가려고.”'호태의 대꾸에 수영이 찡그린 얼굴로 쳐다보다가 목욕 가방을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호태 녀석 싱거운 짓 잘하기로 유명하다. 덩치하고 목소리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짓을 참 잘한다. 좀 있음 서른 줄에 들어서는 녀석이 남이야 보거나 말거나 꽤 자주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쭈쭈바며 폴라포며 쪽쪽 빨아먹고 있다. 호태 지네 집보다 수영이네 집이 슈퍼와 가까운 탓도 있겠지만, 정신 차리고 난 후부터 생긴 버릇이 주욱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호태 녀석 표정이 정말 별로다. 넉 달 전에 만난 쭉빵한 아가씨와 또 싸운 모양이다. 몸매 쭉빵한 아가씨가 심성도 쭉빵한 것은 아니라고, 쉽게 얻을 수 없는 쭉빵한 몸매만큼이나 한 성격 한다던데, 까다롭기가 우주 끝에 다다라 비윗살 맞추다 화병 나게 생겼다 했었다. 오늘은 또 무슨 비위가 틀어졌기에 남의 대문에 앉아 왕창 구겨진 낯짝을 하고 쭈쭈바를 빨고 있을까.'“또 싸웠니?”'“채였다.”'호태의 심드렁한 대꾸에 수영이 깜짝 놀란 얼굴로 호태를 쳐다봤다. 찼으면 찼지, 채였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185센티미터나 되는 키에 80킬로그램의 몸무게. 거의 환상적으로 잘 빠진 몸에 인물 좋지, 목소리까지 끝내주는데 이런 남자 어디서 또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찼을까. 물론 겉모습 말고 속을 들여다보면 걷어차일 소지가 다분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비윗살 맞추다 화병 나게 생겼다며 금방이라도 걷어찰 것처럼 굴던 녀석이 무엇 때문에 차였을까.'“채였어?”'“그래.”'“어쩌다가?”'“가만히 있다가.”'“가만히 있다가 왜 채여?”'“너무 가만히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