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니스의 아침 '''' '하얀 달무리가 서늘해 보이는 겨울 새벽의 베니스.'푸른 초승달처럼 늘씬하고 아름다운 곤돌라들이 검푸른 물결 위에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거대한 산마르코 성당의 첨탑 위로 새벽 별빛이 긴 너울처럼 아스라이 비치고 있는 아래 한 건물 속 아치형의 낡은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커다란 대리석 벽을 배경삼아 긴 그림자가 기지개를 펴듯이 길게 뻗어져 나왔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실제로 날렵한 도둑고양이처럼 길게 기지개를 뻗고 있었다.'종혁이 깐 사오네 주점에 매달려 있는 어스름한 램프 빛 아래에까지 왔을 때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흔들리던 그의 그림자는 드디어 불빛 아래에서 그의 모습을 드러냈다. 쌀쌀한 겨울 날씨인데도 그는 두꺼운 겉옷은 허리춤 벨트 사이에 끼어 매달아 놓고 짧은 소매의 면 티셔츠 차림이었다. 상당히 건강하고 추위에 강한 사람이던지 아니면 마초라는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살 만한 모습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꽤 크다 싶을 정도의 건장한 체격, 역삼각형의 떡 벌어진 어깨와 소매 밖으로 아름드리나무처럼 곧게 뻗어져 나온 두 팔은 대리석으로 깎아 놓은 조각상과도 같이 실타래처럼 아름답게 엉켜 있는 근육으로 감싸져 있었고 두 다리는 평행선과도 같이 곧고 한없이 길어 보였다. '가로등 불빛에 슬며시 보이기 시작한 종혁의 얼굴은 연신 쩍쩍 입을 벌려 하품을 해대느라 인상파 그림처럼 일그러져 있었지만 어느 한 군데 빠질 데 없이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었고 특히 얼굴 한 가운데 칼날처럼 매섭게 속은 콧날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한쪽 어깨에 둘러매져 있는 커다란 카메라는 탄탄하게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그의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촬영 장소 헌팅을 위해 일찌감치 숙소를 나선 종혁은 생각보다 거리가 어두운 것을 보고 자신이 너무 일찍 서두른 것은 아닌지 후회되었다. 그러나 곧 순식간에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열리는 좌판 장에서 파는 유명한 지중해 오렌지를 닮은 태양이 수평선에서 비스듬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물새들이 그것을 신호삼아 일제히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았고 밤사이 깊게 잠들어 있던 베니스의 거리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종혁은 가슴을 펴고 폐 깊숙이 맑은 산소를 많이 머금은 베니스의 차가운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는 가슴을 가득 채우는 약간은 짭조름한 냄새가 나는 베니스의 공기를 사랑했다. 그리고 언제나 어제와 다른, 항상 새로운 베니스의 아침이 좋았다.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카메라의 렌즈 케이스를 벗겨냈다. 그가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는 그 러시아 KGB에서 첩보용으로 사용했던 JSR 초기 모델 중의 하나인 카메라는 가격만으로도 일반인들이 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부속품들에 대한 높은 안목을 요하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카메라 전문가들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종류였다. 그것은 화질이 선명하고 명암이 뚜렷해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특성이 있었다. 그래서 종혁은 이 카메라를 찾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그 와중에 많은 일들과 추억과 고생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만큼 그에게 이 카메라는 사랑하는 애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렌즈를 닦기 위해 주머니에서 융 조각을 꺼냈다. 스페인으로 촬영 여행을 떠났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새까만 머리의 집시 여인인 마리에따는 그가 한국으로 떠날 때 그에게 이별 선물로 진한 키스와 함께 자신의 부드러운 치마 자락을 잘라 주었다. 그 치마는 마을에서 최고의 직녀로 손꼽히는 그녀가 직접 베틀에 앉아 지은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그 융 조각을 받아 소중하게 보관하며 렌즈를 닦을 때마다 그녀를 떠올렸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선 친구와 같은 깊은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렌즈를 닦는 동안 그는 촬영 여행 중에 있었던 추억들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베니스의 아침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을 찌르는 것 같은 밝은 햇빛에 종혁은 빛에 익숙해지느라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베니스의 강한 햇살을 받는 그의 모습은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멋진 근육질의 라오콘 석상처럼 아름답게 보여서 아침 일을 시작하는 장터의 푸른 눈의 젊은 아낙네들은 잠시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종혁을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 '''''2. 강버들, 베니스에서 노숙자 되다'3. 종혁, 물에서 건져낸 여자에게 밥까지 먹이다'4. 버들, 강아지가 되다'5. 로마에 가다'6. 카프리 섬으로'7. 푸른 동굴을 지나 베니스 영화제로'8. 베니스의 가면무도회'9. 그 해, 늦여름의 사랑 이야기'10. 한국으로 돌아와서'11. 베니스로 추락하는 검은 머리의 천사'12. 약혼식 전날'13. 너에게로 또다시'14. 버들과 종혁'15. 지영과 상화'16. 결혼식'17. 새로운 시작 '18. 너를 향한 마음'19. 믿을 수 없는 마음'20. 어지러운 회오리바람 속으로'21. 다시 이별'22. 베니스의 하늘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