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메이드 인 홍콩 '''''아직은 쌀쌀했다. 차가운 공기가 어두운 골목 곳곳에 숨어 있었다. 조심하거나 덜렁대거나 하는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실루엣은 하필이면 길모퉁이에 세워 둔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쪽의 먼 하늘로 푸른빛이 열리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할 무렵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그야말로 생뚱맞은 한옥에서도 인기척이 났다.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서 깜빡 졸다 머리를 박은 진주는 제 성질에 벌떡 일어나 발로 차댔다. 혹시나 음식 찌꺼기 냄새가 배었을까 불쾌한 얼굴로 옷을 킁킁댔다. '한옥 마당에 켜져 있던 육십 촉짜리 전구에 불이 꺼졌다. 그리고 마른기침을 해대는 노인네가 나오고 있었다. 진주는 다시 음식물 쓰레기통을 붙잡고 뒤로 숨었다. 도둑 고양이마냥 살그머니 얼굴만 내밀고 노인네의 행방을 살폈다. '노인은 흰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옆구리에는 피트 병을 끼고 있었다. 혼자 사는지 대문에 고리를 끼워 자물쇠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고 노인네 훔쳐갈 게 뭐가 있다고 저리 문단속을 열심히 하는 거야.” '진주는 작게 중얼대며 못마땅하게 봤다. '노인이 골목 저쪽으로 사라지자 진주는 다리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그래도 소용없네요. 내가 드는 문은 거기가 아니란 말이지.” '제 생각에 좋아 낄낄 웃었다. '그녀가 드는 문은 따로 있었다. 담장 밑으로 부서져 떨어져 나간 골 파인 곳에 운동화 코를 쑤셔 박아 넣고 껑충 뛰어 올라 상단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그 다음은 쉬웠다. 덩어리를 바닥으로 굴리면 그만이었다. '“아!” '진주는 담을 내려오다 장미 가시에 찔렸다. 몹쓸 장미꽃은 만발하게 피어 있었다. '“하여튼 노인네는 도움이 안돼요.” '찔린 손가락을 입으로 빨았다. '그녀는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았다. 방금 전 그녀의 소란 말고는 적막 그 자체였다. 나무 몇 그루와 꽃밭이 전부인 마당에도 안채에 빙 둘려 싸여 있는 미닫이창에도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나이스 모닝.” '진주는 흐뭇하게 웃고 새벽의 쿨한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로 사용하는 방은 쳐다보지 않고 부엌에서 이어지는 작은 사닥다리를 밟았다. 요란하게 삐걱대는 소리도 상관없었다. 이 집에는 자기 혼자뿐이었다. ''''''<1> 배우 소개''<2> 그 녀석 ''<3> 심포니 오브 라이트 ''<4> 캔디 캔디 ''<5> 진짜 연애''<6> 미래에 사는 여자, 과거에 사는 남자''<7> 그 녀석의 비밀''<8>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9> 같은 사랑, 다른 모양''<10> 결혼하고 싶다''<11> 혈기 마른 사람''<12> 우울한 일요일''<13> 남자가 떠나는 이유''<14> 마법의 성''<15> 아틀란티스 노처녀''<16> 여행이란''<17> 그해, 가장 추운 겨울날''<18> 이중데이트''<19> 구제불능을 구제하는 법''<20> 그 녀석에게 물들다''<21> 안소니를 보내다''<22> 운전 면허증, 그리고 출판 기념회''<23> 그녀에게''<24> 다시 꾸는 꿈''<25> 재벌가의 여자''<26> 나는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27> 바람이 분다''<28> 그녀가 돌아왔다''<29> 괜찮아''<30> 사랑에도 매뉴얼이 있었으면''<31> 강한 여자''<32> 아무도 모르는 작은 나라''<33> 그 녀석이 떠났다.''<34> 때로는 백치로 살기''<에필로그> 그 녀석의 마지막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