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 갑자기 냉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너무 추워지는 하지다. 에어컨을 켠 것도 아니데 이 냉기가 설마 이 아저씨한테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왜? 무엇 때문에?''“어디 아파요? 왜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 건지요. 이봐요.”''“남자가 있다고 했나?”''“남자야 주변에 널려 있어요. 우리나라 절반 넘게 다 남자인데.”''“말 돌리지 말고, 내 말 뜻 알아들었을 것 같은데.”''여전히 굳어진 표정을 풀지 않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아혁의 시선을 피하는 하지다.''“남자라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정의를 내려 줘 봐요 그럼.”''“사귀는 남자라든가. 아니면 좋아하는 남자라든가. 물론 이, 성, 적으로.”''“그게.”''“왜 남자가 하도 많아서 분류가 안 되나?”''“하여튼 꼭 말을 해도 그렇게 빌빌 꼬면서 말해야 되요? 나이 드셨다는 분이. 참 나.”''“물어 본 내가 잘못인가? 왜? 주변에 남자가 있으면 아무 놈이나 붙잡고 결혼하면 되겠네.”''“도대체 왜 그래요? 내가 결혼을 하든 말든 아저씨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아저씨와 상관 없잖아요.”''“그래 상관없지. 하지만. 도대체 왜 자꾸 아저씨라고 그래?”''“그럼 뭐라 불러요. 큰형이라는 호칭도 싫다고 하고.”''“나는 동성한테 큰형소리 듣고 싶지, 여자한테 형 소리 듣기 싫다. 그럼 그냥 이름 불러.”''“이름이요? 정말 이름 불러도 되요?”''“그래, 한번 불러 봐.”''“아. 혁.”''“붙여서 불러봐.”''“아혁아.”''“야, 누가 반말하래. 뒤에 더 붙는 호칭 있잖아.”''“…… 흥, 이름 부르라고 하고서는”''“흠, 그냥 그럼 아혁 씨 그래라. 알았지? 후유 이제 호칭 문제는 해결 되었고, 네 결혼 문제.”''“내 결혼 문제에 왜 신경 써요?”''“…….”''이번에는 아혁의 말문이 막혔다. 진짜 왜 자신이 신경 쓰는지 아혁 자신도 모르는데 그렇게 꼭 집어서 물어보면 답변이 없다.''“왜요? 네? 아니면 아. 혁 씨가 해결해 줄래요?”''“해결? 어떻게. 무슨 방법이 있어?”''“그게, 아직은.”''“흠, 그럼 곰곰이 생각해 봐. 내가 도와 줄 테니.”''“빈말로 그러는 거면 사양하고요.”''“빈말이 아니라 도와준다니까.”''“그럼. 아혁 씨 혹시 애인 있어요? 아니면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여자분 이라든지.”''“아니. 저번에 말한 것처럼 없어. 아직은. 왜?”''“그럼.”''갑자기 아혁이 앉은 쪽으로 몸을 돌리는 하지가 아혁의 눈과 마주치자 민망한지 헛기침을 해 댄다.''“험, 그러면. 나와 결혼해 줄래요?”''“결……혼?”''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강아지에게 한방 먹은 아혁이다. 고지식함이 묻어 있는 아혁은 결혼 신청을 한 강아지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강하지 이 여자도 나를 남자로 의식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내 혼자만의 착각? 아니면 혹 첫눈에 나한테 반한 건가? 아니면 나를 사랑이라도…….’''별의 별 생각이 그 순간 머릿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있는 아혁을 향해 실망스럽다는 듯 하지의 말소리가 들린다.''“안, 되겠죠? 미안해요, 괜히 제가.”''“아니, 안 미안해도 돼. 그런데 결혼이라면 남자가 먼저 신청해야 하지 않나?”''“그게, 진짜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 하는척하는 걸로요.”''“하는 척?”''“네, 연극 비스무리하게.”''“싫어.”''“네? 지금 싫다고.”''“연극 비스무리 뿐만 아니라 하는 척도 싫어. 그러다 들통 나면? 그 책임을 어찌 지라고. 그리고 나 연극 잘 못해. 들키기 딱 좋지. 준혁이라면 몰라도.”''“준혁형요?”''“준혁이는 안 돼. 분명히 안 된 다고 했어.”''“그럼, 어쩌라구요. 그렇다고 설마 아혁 씨가 저 같은 여자하고 결혼을 진짜로 하겠어요? 물론 나야…….”''“물론, 뭐?”''“생각 좀 해본다고요.”''자기가 말해 놓고도 민망한지 다시 고개를 차 정면으로 바라보는 하지가 왜 이리 예쁘게 보이는지, 꽉 끌어 안아주고픈 충동을 겨우 자제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하는 아혁이다.''“그럼, 나도 생각 좀 해보고.”''하지는 말을 마치고 다시 차를 출발시키는 아혁에게 자연스레 또 눈길이 갔다.''‘하지야 눈 돌려라. 이러다 너 사팔뜨기 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