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아득히 먼 서쪽, 하늘과 가장 가까우며 여러 선인들이 사는 산이 있다. 그곳은 천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간이 쉽게 길을 더듬어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산의 정상에는 황금과 대리석으로 지은 호화로운 궁궐이 있었다. 궁궐의 위엄을 증명하듯 높이만 해도 1만1천리 111보 6자나 되었으며, 그 주변에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수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과실은 인간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고,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았다. 궁궐의 왼쪽으로는 너무나도 광대해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골짜기가 있었고, 지상을 흐르는 강은 물론, 하늘의 강을 흐르는 모든 물이 이 골짜기로 흘렀다.'쏟아지는 물살이 방울져 물안개가 자욱한 골짜기에는 한 노인이 수목에 기대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고고하기 짝이 없었다. 노인의 흰 도포자락과 백미(白眉)와 은염(銀髥)은 안개가 자욱한 골짜기의 풍광과 어우러져 한 폭의 선경화(仙境畵)를 보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한순간 낚싯대가 미미하게 흔들리자 노인의 백미 역시 슬쩍 움직였다.'“흐음,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구나. 허허허허.”'선인(仙人)다운 여유로운 웃음이 노인의 입가에 머물렀다. 노인이 손을 한번 휘두르자 끊임없이 흔들리던 물결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한 쌍의 남녀의 영상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충만했고, 마주보는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그 모습만 보아도 과연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라 명하기에 이미 충분한지라, 그 연을 맺어준 노인의 마음은 매우 흡족했다.'“이번에도 무사히 연을 맺어주었구나. 혼보(婚譜)에 또 하나 적을 일이 생겼군.”'아름다운 남녀의 결합에 흥이 오른 노인은 큼직한 서책을 꺼내 들고 무언가를 힘차게 적어 내렸다.'“이 내가 없다면, 인간 세상은 곧 멸할 것을. 그 누가 나를 따르리오?”'다분히 자만심이 가득한 외침이었으나 남녀의 인연과 혼인을 관장하는 노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싸늘한 일갈이 저편에서 울려 퍼졌다.'“그 무슨 말씀을 그리 섭하게 하시는 게요? 세상 모든 인간의 인연을 혼자 결정한다 공언하는 것은 실로 광오한 말이지 않소이까?”'노인은 고성이 울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두 사람의 승려가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한 송이 연꽃을 지니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은 원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챈 노인의 입에서 불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