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야, 이 글 읽어봤어?"'오후의 햇볕이 캠퍼스 잔디밭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잔디밭에 앉은 진하라고 불리는 텁수룩한 머리에 굵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학생의 무릎을 베고 누운 맑고 뽀얀 얼굴을 가진 여학생이 작은 책을 손에 들고 흔들어 보인다.'"어디 봐. 응? 일본 잡지네? 월간 <피처>?"'"어, 일본어 공부하느라 읽을 거리를 찾는데 여기 연재되는 글이 좋다고 칭찬해서. 그런데 정말 좋아."'"냉정과 열정 사이?"'"응. 읽어봤어?"'"응, 읽었어."'"여기 아오이와 쥰세이가 만나기로 하는 피렌체 말이야."'"응, 피렌체. 피렌체의 두오모(Duomo). 땀을 흘리며 몇백 계단을 오르면 거기에 기다리고 있을 피렌체의 아름다운 중세 거리 풍경에는 연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미덕이 있다고 했어. 갑자기 아오이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때로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실수라도 되듯이 기억 속에 밀폐시켜 두고 싶었던 오랜 약속. 만날 것을 믿고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와! 진하야, 그 긴 문장을 다 외었어? 진짜 놀라워! 놀라워!"'"읽다 보니 좋아서 기억에 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