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한라호텔에서 열리는 거대기업인 엠아이사의 창립기념파티는 신문에 한 지면을 차지할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큼 호화롭기 그지없었다.'고풍스런 인테리어가 차분하게 고위층의 손님들을 맞이했고, 입구 한 켠에 일렬로 늘어선 축하화환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시현은 입구에서 정중히 자리를 안내해주는 웨이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서 주눅 들지 않으려고 자그마한 턱을 치켜들었다.'커다란 홀 안의 중앙에 거대한 얼음조각이 회전판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며 아주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주위를 둘러싼 드라이아이스의 뭉클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교묘하게 감춰줬다.'시현은 이 이질적인 장소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사람밖에 없었다.'눈에 띄지 않은 구석자리를 부탁하고 자리에 태연하게 보이도록 앉은 시현은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커다란 눈망울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다행히 그녀가 찾는 사람은 시야 안에 없었다.'안도의 한숨을 가만히 내쉬며 그녀는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아는척하지 않기를 기도했다.'눈에 띄지 않기 바라며 구석에 앉아 있어도 시현은 누구나 힐끔거릴 정도로 시선을 사로잡곤 했다.'섬세한 목덜미와 한쪽어깨만 드러낸 까만 이브닝드레스차림의 시현은 유달리 하얀 피부 덕분에 도자기인형처럼 보였다.'반듯한 이목구비가 뚜렷한 시현의 작고 도톰한 입술 안으로 사라지는 작은 체리조각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남자들이 남몰래 한숨을 쉬었지만, 시현은 주위에 관심 없이 마냥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어서 빨리 이 곤혹스런 순간이 지나고 자신의 도피처로 도망가고 싶었다.'하지만, 진형의 명령대로 그녀는 여기서 적당히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진형의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자 시현은 떨려오는 손끝을 감추기 위해 테이블보 아래로 감추어 애꿎은 냅킨만 비틀어댔다.'테이블위에 장식되어 있는 분홍과 보라의 꽃들이 꽃꽂이된 수반은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한편의 단상에 오케스트라단원들이 은은한 클래식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아주고 있었다.'시현은 자신의 투명한 잔에 채워지는 샴페인을 응시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겉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은 차분함 그 자체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초조감과 두려움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투명한 유리잔을 들어올려 작은 기포방울이 생기는 샴페인을 입가로 가져가던 시현은 잔잔한 음악 속에서 조그맣게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눈빛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