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 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0 프롤로그

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인구 감소와 관련된 문제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까. 언론에서도 잊을 만하면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계속 꺼냈다.

실제로 학생이 줄어들다 보니 학교가 없어지고 나름 역사가 깊은 아동복 업체가 문을 닫는 등 단순히 인구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부부도 많았다. 그래서 정부는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험관 시술과 관련된 최신 기술들을 전부 다 가지고 와 적용하기로 한다.

다만 그러던 중 미국에서 개발된 성별 선택 기술이 한국에서는 큰 문제로 떠올랐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유전자를 조작해 아이의 성별 또한 미리 결정할 수 있게 된 건데 비용은 일반 시험관 시술의 40배에 달했지만 의외로 수요가 많았다.

유전병을 피하고 싶거나 첫째와 다른 성별의 아이를 원해서, 혹은 부부의 선호도 등으로 인해 성별을 결정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한국 정부는 큰 고민에 빠진다. 윤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내 아이의 성별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건데 나라가 무슨 상관이냐고 시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양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온갖 정책을 다 펼쳐 보았지만 백약이 다 무효로 돌아가 인구는 점점 줄어 갔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도 하루 이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정부는 자그마한 불씨라도 살려 나라의 수명을 어떻게 해서든 연장해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서 시험관을 할 때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추가로 들어가지만 아이의 성별 역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도입된다.

“유전자 조작이 말이 되냐!”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책임질 건데!”

“정부는 당장 결정을 철회하라!”

“철회하라!”

그러자 시민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거리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깃발이 도로에 나부끼다 못해 밤늦게까지 확성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물리적인 충돌 또한 자주 빚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정부의 결정은 뒤집히지 않았고 그렇게 1년 후 성별이 결정되어 태어나는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다.

내가 태어나기 전 하늘나라로 떠난 나의 할아버지는 1급 공무원 출신으로 기관장을 지냈고 내 부모님의 직업 역시 의사였다. 돈이 많은 집안인 만큼 미래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막대한 금액도 기꺼이 투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만 우리 부모님은 자연 임신이 되질 않아 시험관으로 날 낳았다. 부계 쪽의 남자들이 이런저런 질환으로 인해 단명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성별은 여자로 결정된 채로 말이다.

나는 내 출생의 비밀을 꼬박꼬박 정기 점검을 받다 보니 알게 됐는데 그저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만 건드렸으니 다들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 말했고 나 역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무난하게 유복한 환경에서 잘 자랐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특정 아이만 보면 화가 나고 분노가 가라앉지를 않게 되었다. 그 친구는 외모도 훌륭하고 집도 부자여서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남자아이였다. 하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나는 걔가 미웠다.

가끔씩 심한 날은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은 채 그 아이를 신나게 두들겨 패 얼굴과 손에 피가 잔뜩 묻어나 스스로 내가 괴물이면 어쩌나 그런 생각마저 하게 될 정도였지만 분명 그 아이도 초등학교 입학식 때 날 보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졌었다. 마치 벌레를 보는 것처럼 혐오하는 얼굴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마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원수였던 것처럼 마주치기만 하면 싸웠고 아침에 입고 간 옷이 걸레처럼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진 채 집에 돌아가는 날도 많았다.

딱히 누가 먼저 시비를 걸거나 원인을 제공한 게 아님에도 만날 때마다 손이 나가거나 안 좋은 말이 나와 나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 학교에서는 나와 그 아이의 동선을 철저히 분리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했지만 가끔씩 그 아이가 생각나면 가슴이 마구 뛰고 거북한 감정이 밀려와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린 내게는 매우 무섭고 불쾌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런 내 고민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때마다 어른들은 내게 아직 네가 어려서 그렇다,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테니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뭐야? 화면이 왜 바뀌는 거야?”

어느덧 나는 내가 왜 그 아이를 미워하게 된 건지 이유조차 모른 채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군다나 하필 오늘은 18년 전 정부가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아이의 성별을 결정할 수 있게 허락해 준 날이라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TV에서는 인구절벽해결위원회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잠시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뉴스 스튜디오로 전환되는 게 아닌가?

“속보입니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성별이 정해져 태어난 아이들은 서로를 혐오하게 된다는 미국 유전자 연구소의 추적 관찰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깜짝 놀라 잠시 리모컨을 만지려던 나는 나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소파에 앉은 채 혼잣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자세한 내용을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뉴스에 나온 말이 전부 다 사실이었다. 비밀리에 미국 유전자 연구소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성별이 결정된 채 태어난 아이들을 10여 년 동안 추적 관찰해 지켜보았고 그 결과 나 같은 애들끼리 마주치면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걸 알아냈다고 한다.

다만 추가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시간이 필요했으며 이 결과를 발표하면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측되어 몇 년간 발표를 유보하다가 이제야 치열한 내부 논의 끝에 공개를 결정했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던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

그 아이도 나처럼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거라면 내가 정말로 그 아이를 미워해서 때린 게 아니라는 거니까. 잔인하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냥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겠지.

그러다 나중에는 억울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어릴 적에 그 아이를 두들겨 패면서 튄 피가 손에 묻어 있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꿈에 나올 때도 많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괴물이 된 거 같았고 나중에 범죄를 저지르면 어쩌나 그런 걱정까지도 했었다.

그런데 그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 유전자 조작의 부작용이라고 하니 참으로 황당할 따름이며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하기도 힘들 것이다.

“저주다! 저주가 내렸어!”

“이건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한 대가야!”

“인류가 멸망할지도 몰라!”

“당장 성별을 선택하는 시험관 시술을 중단하라!”

“중단하라!”

충격적인 뉴스가 터지자 역시나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그 어느 때보다 거칠게 시위를 펼쳤다. 하지만 이미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애들을 다시 배 속으로 집어넣을 수도 없기에 정부도 참으로 난감할 것이고 엄청난 항의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미국의 유전자 연구소 또한 부작용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냥 현재로서는 개인이 알아서 잘 대처하는 거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얘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을 뿐이다.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야…….’

**

그렇게 나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진 그다음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항상 찾는 곳이라 별로 낯설지는 않다.

“어서 오세요.”

“아, 네.”

가장 먼저 나는 옷 가게에 들러 마음에 드는 옷을 몇 벌 집기 시작했다. 가격은 확인하지 않았다. 엄마가 준 카드로 결제를 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거 다 결제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다른 가게로 들어갔다. 이번엔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이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가격 따위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마음에 드는 것들을 눈으로 정한 뒤 입을 열었다.

“이거랑 이거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손가락으로 마음에 드는 품목을 지정한 다음 카드를 내밀자 이내 직원이 달려와 진열대에 있던 목걸이들을 꺼내 포장을 하러 갔다.

그사이 나는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간 내 인생은 겉으로 보기엔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것 없이 자라 모두의 부러움을 살 법도 하지만 의외로 자세히 살펴보면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친척분들은 이런저런 질병으로 일찍 다 돌아가셨고 부모님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가 늦은 저녁 무렵에 귀가하니까.

어릴 적에는 유모가 집에 있어 말벗이라도 해주곤 했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시간을 나 홀로 보내고 있고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공허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지만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정말로 외롭다.

언론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성별이 정해져 태어난 애들에게 저주이니 부작용이니 온갖 수식어를 붙이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부모님은 아직까지 내게 아무런 위로나 조언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 그냥 내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모르는 척해 주고 있길 바라는 건가? 아니면 이제 다 컸으니 알아서 스스로 극복하길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포장 끝났는데 영수증 넣어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외로움에 취해 있던 나는 쇼핑백을 손에 쥔 다음 이번엔 아래층에 있는 화장품 코너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나는 가격 같은 건 상관하지 않고 여러 품목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화장품들을 차근차근 구매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내 양손에는 짐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나는 쇼핑이 좋다.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원하는 걸 마음껏 구매할 수 있는 데다가 쇼핑을 하는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과거의 악몽 혹은 현재의 불안감을 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외로움 가득한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일지도 모른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잠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밖을 바라보자 날이 새까맣게 어두워진 상태였다.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가 마치 이 쇼핑몰에는 나만 남아 있는 거 같았다. 일부 매장에서는 직원들이 서서히 퇴근 준비를 하거나 퇴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짐이 많은 만큼 일단 나는 쇼핑몰 가장 구석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은근히 많이 샀네.”

이런 경험이 많은 나는 큰 쇼핑백 안에 작은 쇼핑백을 집어넣으며 조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당신이 먼저 나 이곳으로 유인해서 갑자기 공격했잖아.”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려는 거야?”

“어쩔 수 없어,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마치 하늘이 내게 당신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거 같거든.”

그런데 내 바로 옆 입점 준비 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상점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대화 내용이 섬뜩해 당장이라도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가서 살펴봐야 하나?’

“끄어억! 살, 살려 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사이 매우 위급한 듯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내 귀에 꽂혔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