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크프리드는 품격 있는 드래곤이었다.

한겨울의 푸르른 달밤, 그 만월을 향해 불을 뿜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는 가난한 화가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스스로 밤하늘에 눈을 뿌리며 화염을 뿜어줄 정도로 순수한 예술혼에 대한 존중과 세상에 비칠 자신의 모습에도 애정을 마다하지 않는 수준 높은 마음의 격을 갖추고 있었다.

“다 그렸는가.”

언행도 고상하고 예술과 철학을 사랑하며 고즈넉한 성품은 타 종족을 대할 때에도 늘 온화했다.

“요정들이 오늘은 소풍을 왔군. 도시락은 무얼 싸 왔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마법을 발해 인간의 모습으로 화하면 차분하고 여리여리한 그 미소년적인 모습은 냇가로 모여든 뭇 여성들을 온통 뒤설레게 했는데.

“오빠악!”

귀티 나는 두 볼과 깊고 고요한 눈빛이 속눈썹을 타고 떠올라 푸른 하늘빛에 어리었는데.

“오빠, 나 어떡해!”

“꺅꺅꺅!”

마을의 오래된 서점에서 시집을 읽으면 남녀노소가 밖에 모여들어 신비함에 홀린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인근 도시를 방문해 찻집의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면 수많은 아가씨들이 한 번 시선을 맞추고 싶어 애간장 어린 눈빛을 글썽거리곤 했다.

“오빠가 내 첫사랑이야! 오빠악!”

“나도오!”

올해 나이 삼천백칠십 두 살, 지크프리드는 자신을 부르는 무수한 사랑의 갈망 속에서 미소년적인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봄날의 시공에 첫사랑의 향기가 떠가는구나.”

지크프리드는 이천삼백칠십칠 년 연상이던 엘리자베스가 생각이 났다.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별빛이 되어 하늘로 떠나간 첫사랑을 떠올리며 찻잔에 입술을 대던 지크프리드는 살짝 뜨거워 놀랐지만 불을 뿜는 드래곤의 고상함을 유지하며 입술에 침을 바른 후 다시 차를 마셨다.

“오빠, 내 입술에도!”

“내 엉덩이에도! 꺄아악!”

가는 곳마다 참한 여성들의 구애가 꽃보라처럼 날렸지만 고즈넉한 지크프리드의 시선은 푸른 하늘가 추억의 뭉게구름을 떠갈 뿐이었다.

‘그녀의 솜사탕 같은 마음에 다시 키스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엘리자베스….’

사무치는 첫사랑의 추억만이 그의 모든 것이었다.

하여 아름답기로 소문난 여성 드래곤인 크리스탈 역시 지크프리드를 향한 천년의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한 자락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슬픈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