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근 당하다

서울 신촌의 한 유명한 점집.

흰 종이를 펼친 무당 아줌마가 무언가를 써 갈겼다. 그녀의 포스에 눌린 고야는 맞은편에 앉아 마른침만 삼켰다.

“아가씨는 미용하면 딱 맞겠네.”

실소가 절로 나왔다. 잘 본다기에 겨우 예약했건만.

“제가 미용이요?”

“그래, 미용. 애견 미용도 좋고, 네일아트 같은 세심한 건 피하고.”

이곳을 추천해준 건 마포구 정보통 수연이었다. 일전에 그녀의 추천으로 고깃집에 갔다가 혼자서 고기 8인분을 먹은 적도 있었다.

이번엔 그녀의 선택이 틀린 것 같았다. 고야는 혀를 차며 대꾸했다.

“저 전공이 일본언데요?”

“사주에 그렇게 나오는데? 미용하면 귀인도 만나고 남자도 들어온다고.”

무당의 말투는 점점 조급해졌다. 탐탁지 않은 표정을 읽었겠지.

“아가씨, 내 말 들어. 미용하면 정말 잘 될 거야. 잘되면 꼭 초 올리러 오고.”

‘결국 그게 목적이었나 보네.’

“얼마예요?”

“십만 원.”

고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테이블 위에 돈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꾸벅 인사하고 방을 나서는데 무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가씨 성질 봐. 아가씨, 내 말 꼭 들어. 알겠지?”

***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 대로변.

그곳엔 오늘도 수만 명의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다. 모두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때 고야는 그저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는 뚜렷이 없었다. 머릿속엔 방금 쓴 십만 원 생각뿐이었다.

‘그거면 공연 한 번에 LP가 두 장인데.’

그때 재킷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세상을 바라본다. 너는 그대로 아름다워.]

사랑하는 인디 밴드 ‘더 신스’의 신속의 후렴구. 고야는 핸드폰을 들고 잠시 감상하다 끊길 때쯤 전화를 받았다.

- 언니, 점보고 오셨어요? 어때요? 잘 보죠?

수연은 한껏 신이 난 듯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더라.”

- 왜요?

“나보고 미용하라던데 내가 미용? 말이 돼?”

고야는 조소했다. 같은 생각일 줄 알았던 수연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 언니가 미용…. 왜요? 잘할 것 같은데? 언니 옷 잘 입잖아요.

“엥? 내가?”

- 네. 화장도 잘하고, 언니 완전 힙한데?

“나 오늘 생일이야? 비행기 뭐야.”

그들은 낄낄댔다.

상점 쇼윈도에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핫한 브랜드의 크롭 재킷, 박스티, 와이드진에 일부러 두 치수 크게 신은 농구화까지. 수연의 말대로 확실히 힙했다. 어느 세대에 찔러넣어도 촌스럽진 않을 패션.

‘그런가? 말이 되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고야는 앞으로 나아갔다. 전방 상가 건물의 노란 현수막이 눈을 잡아끌었다.

[연남 미용 학원. 25% 특별 할인 이벤트. 취업률 99%]

어차피 꿈도, 비전도 없는 삶. 미용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았다. 고야는 충동적으로 말을 흘렸다.

“한번 해볼까?”

- 언니는 분명 잘할 거예요.

사람들이 번화가 쪽으로 빠져나갈 때, 발이 홀린 듯 반대편 학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큰맘 먹고 1년 치 학원비를 결제했다.

***

‘진짜 돌았었지.’

카드로 긁은 학원비 할부가 빠져나가는 마지막 날, 카드 값 미납 안내 문자 메시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용 자격증을 취득한 지 일 년이 되었지만, 쉰다섯 개 미용실에 지원했으나 모두 불합격했다.

이제는 고등학생도 하는 스텝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지 못하는 현실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모든 게 무당 아줌마의 저주처럼 느껴졌다.

다음 달 카드 값을 어떻게 메꿔야 할지 걱정스러워, 고야는 남동생 동규에게 연락했다.

- 누나 100만 원만 꿔주라. 취업하면 바로 갚을게. 카드 값이 부족해서….

- 아니 진짜 한두 번도 아니고. 누나 이번이 마지막이야. 알겠어?

거실에서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곧 취업 안 하냐는 잔소리가 시작될 듯했다.

고야는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모집 공고는 0개. 취업할 곳조차 없는 상황에서 머리를 움켜쥐고 고민했다.

미용하겠다고 설치느라 거의 1년을 놀았는데, 취업이 될지 의문이었다. 왜 그날 충동적으로 미용 학원을 결제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을 때, 못 보던 모집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개인 코디네이터, 초보 가능, 방송 메이크업, 헤어 가능자, 운전면허 소지자, 남성 환영, 동성애자 환영, 오래 일할 분.]

‘동성애자 환영? 무슨 모집 공고가 이래?’

경력도 없고 내일모레면 서른인 악조건의 공고. 연봉은 무려 5천만 원이나 되었다.

‘다단계 아닐까?’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거실에서 엄마의 타령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자식 농사를 잘못 지어도 한참을 잘못 지었지….”

분명히 듣기를 바라는 소리겠지. 머리가 어질어졌다.

‘그래, 일단 면접이라도 보자. 이상한 데면 안 가면 되지.’

고야는 그 수상한 공고에 온라인 지원을 마쳤다. 특이사항에 ‘동성애자’라고 적어 넣으며.

***

다음 날 바로 연락받은 고야는 곧장 면접이 잡혔다.

‘와, 설마 했는데 일할 곳이 여기야?’

면접 장소에 도착한 고야는 미용실, 회사가 아닌 한 아파트 앞에 서 있었다.

돈이 있어도 못산다고 하는 유명한 곳.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안에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 지레 겁을 먹은 고야는 발을 돌렸다 멈췄다.

“이번에도 또 떨어지기만 해봐.”

아침에 들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고야는 입술을 질근 씹으며 아파트 정문을 넘었다.

호텔 같은 넓은 로비에는 유니폼을 챙겨입은 경비원들이 서 있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쭈뼛대며 엘리베이터로 다가가자 경비원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 방문하시죠?”

“그, 그게. 601호요.”

“아, 네. 601호 엘리베이터는 이쪽입니다.”

호실마다 엘리베이터도 다른 것 같았다. 고야는 머쓱하게 그가 안내해준 반대쪽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넓고 새하얀 복도에 까만색 거대한 문, 으리으리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혹시 아는 연예인일까, 내심 기대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 너머로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늘 면접 보기로 하신 분인가요?

“네, 최고야라고 합니다.”

- 잠시만요.

현관문이 열리자 안경을 쓴 통통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무리 봐도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반가워요. 들어오시면 돼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자글자글 잡히는 눈가의 주름이 그의 나이를 알려주었다.

드넓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갔다.

복층 구조로 된 층고가 높은 거실은 무채색으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고, 벽 한 면을 가득 메운 유리창으로 반짝이는 한강이 훤히 보였다.

운동장처럼 드넓은 실내엔 먼지 한 점조차 없었다. 꼭 영화 속에 나오는 부자의 저택 같은 곳. 고야는 입은 닫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큼큼.

남자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고야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가방에서 이력서를 꺼내 들이밀었다.

“허허, 씩씩하시네.”

그는 안경을 추켜올리더니 이력서를 찬찬히 훑어봤다. 고야는 그가 가리킨 소파에 앉아 질문을 기다렸다. 잠시간의 적막.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그전에는 무역 회사에서 일하셨네요?”

“네. 경리 업무 봤습니다.”

“미용 자격증 딴 진 얼마 안 됐고요.”

“네. 초보도 가능하다고 하셔서 지원했습니다.”

“그렇죠. 뭐 오래만 일해주신다면 상관없긴 해요.”

남자는 이력서에서 눈을 떼고 조심스레 물었다.

“온라인 지원하실 때 동성애자라고 하셨는데, 정말 동성애자이신가요?”

“네? 네.”

바짝 마른 입에 거짓말하느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고야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흠. 그러시군요.”

“저기 실례지만 왜 동성애자만 뽑으시는지….”

“…그게 실은 같이 일하게 될 사람이 문제가 좀 있거든요.”

“문제요?”

저벅, 저벅.

2층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이 자연히 그쪽으로 돌아갔다.

‘진짜 존 X 잘생겼네,’

그곳엔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천장에 닿을 듯한 큰 키, 이국적인 외모. 입체적인 얼굴과 진한 눈매가 조각상 같았다.

고야는 다시금 넋을 잃고 말았다. 대한민국에서 혼자만 그림체가 다른 남자.

그는 영화처럼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다가올수록 숨이 함께 멎었다. 왜 동성애자만 뽑는다고 한 건지 비로소 이해됐다.

그가 자다 깬 듯한. 조금 잠긴 목소리로 짜증스럽게 물어왔다.

“뭐야, 누구야?”

“오늘 면접 보러 오신 분. 최고야 씨야.”

“아, 코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는 고야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뜨거운 시선과 휘어진 입꼬리. 꼭 먹잇감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이름이 최고야야?”

“네.”

“너 최고야?”

“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은 건 평생 있었던 일이다. 면접 자리에선 처음이었지만. 알 수 없는 불쾌감과 수치심이 몰려왔다.

“허허, 빌도 참. 너 애가 진짜 왜 그래. 그럼, 최고야 씨,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고요. 확정되면 모레 연락드리겠습니다.”

면접을 본 남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고야는 꾸벅 인사하고 거실을 빠져나갔다.

현관 복도에 막 발을 디뎠을 때. 목덜미 뒤에서 하얗고 긴 손가락이 나타났다.

그 손가락이 턱을 잡아당겼다. 저항할 새도 없이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잘생긴 남자의 블랙홀 같은 까만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입꼬리도.

“너 내일부터 일해.”

짙은 목소리가 귓속을 강타했다.

“마음에 드네.”

이어서 퍼지는 그의 체취. 우디 향과 은은한 담배 냄새. 고야는 다른 세계를 헤매는 듯 몽롱해졌다.

“내일….”

내일, 내일 분명 무슨 일정이….

사랑에 마지않는 더 신스 보컬. 한솔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일은 몇 주간 기다린 더 신스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최근 대형 음반 회사와 계약한 후 갑자기 팬이 몰려 티켓팅도 겨우 취소 표 하나 잡았었다.

이런 무례한 남자 때문에 그런 귀한 공연을 놓쳐야 한다고? 고야는 양팔로 그를 힘껏 밀쳐냈다.

“싫어요, 안 돼요.”

“왜?”

“그…. 내일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요.”

“중요한 일?”

“더 신스 공연이….”

“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야는 기가 죽어 횡설수설했다.

“아, 그게…. 정말 중요한 공연이라….”

“연봉 오천보다 중요해?”

“아.”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지방 4년제 대학 문과를 겨우 졸업한 고야가 앞으로 평생 살아도 만져보지 못할.

연봉 오천, 월급으론 약 삼백육십. 무례하다고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돈이었다.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고야는 퍼뜩 현실을 파악하고 빌었다. 그는 씩 미소를 지었다.

“내일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