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리별 선녀! 보리별 선녀! 어디 있어요?”

바람에 휘날리는 긴 검은 머릿결 사이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을 한 신선이 온통 도리천 궁을 온통 뒤지고 있었다.

“제발 보리별 선녀, 그러지 마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지구에서 떠나왔는데 그래요. 제발 부탁이에요.”

한 신선이 나타나 금강별에게 말했다. 그는 아수라로 한쪽 얼굴은 하얀 피부에 선한 인상으로 잘생겼지만, 한쪽은 푸르뎅뎅한 피부로 화가 난 상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금강별 신선, 지금 빨리 천문으로 가봐.”

“아, 아수라, 고마워.”

금강별이 다급히 구름을 타고 천문 입구로 가기 시작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보리별은 이미 지상으로 하강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리별 선녀….”

보리별 선녀는 금강별 신선의 두 눈이 촉촉이 젖어 샛별처럼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형용할 수 없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두 눈에도 슬픔이 가득했다.

“금강별 신선님, 잘 지내세요.”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오기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게 좋을 것 같아요.”

“아, 보리별 선녀.”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어요. 내가 인간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면 내 수호천사가 되어 주세요.”

“보리별 선녀, 제발.”

금강별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금강별의 눈물을 바라보며 보리별의 두 눈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결심한 듯 입술을 앙다문 채, 손으로 눈물을 닦아 손바닥을 펼치자, 눈물이 서로 응집이 되더니 투명한 결정체가 되어 반짝였다. 그건 마치 찬란한 보석처럼 보였다.

“가지 마오. 보리별 선녀, 그럼 나도 그대를 따라갈 겁니다,”

“아니 됩니다. 금강별께서 왜 그런 고초를 겪는단 말이오, 여기서 편히 계십시오.”

“그럴 수 없소.”

금강별이 점점 다가오자, 보리별의 두 눈이 잠시 흔들리더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를 향해 눈물의 보석을 던졌다. 놀란 그가 그 자리에 잠시 멈추어 서서 그녀가 던진 눈물의 보석을 잡는데 그사이 그녀는 몸을 돌려 하늘 아래로 뛰어내렸다.

눈물의 보석은 그의 손바닥을 뚫고 나와 하얀 피가 쏟아졌지만, 금강별은 고통도 잊은 해 그 자리에 서서 구름 아래로 펼쳐진 광경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보리별 선녀가 하염없이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얼굴 없는 귀신이 나타나더니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세요.”

보려별 선녀의 두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얼굴 없는 귀신이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졸랐다.

“으… 아….”

그녀는 거의 숨이 쉬기 힘든 상태가 되어 얼굴이 벌게졌지만,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양손이 없는 귀신이 나타나더니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세요,”

양손이 없는 귀신은 두 발로 보리별 선녀의 몸을 감싸 안더니 꽉 조였다. 보리별 선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며 피가 터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미간을 약간 찡그린 채 인내했다.

이어 두 다리가 없는 귀신이 나타나고, 계속해서 굶주려 해골만 남은 귀신도 나타나고, 두 눈에 피눈물을 흘리는 귀신도 나타나고. 몸이 여기저기 찢긴 귀신도 나타나는 등… 끝도 없이 흉측한 모든 귀신이 보리별 선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몸을 뜯어 먹으려고 했다.

결국 보리별 선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입에서 하얀 피가 쏟아져 인간 마을로 떨어지는데 어느새 하얀 눈이 되었다.

“아악.”

천문 입구에서 지켜보고 있던 금강별이 참지 못하고 내려와, 자신의 손바닥을 뚫고 나온 눈물의 보석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뽑았다,

“으아악!”

그는 눈물의 보석을 던지자 하얀빛들이 눈처럼 내려 악귀들의 몸에 꽂혔다. 그걸 맞은 악귀들은 고통스러운지 몸을 비틀었다. 이어 그는 가슴에서 흰빛의 휘황찬란한 에테르체(비물질) 칼을 뽑아 휘둘렀다. 그러자 칼 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가슴에서 나온 이 칼을 신의 칼이라고 했다. 신의 칼에서 쏟아져 나온 빛을 맞은 악귀들은 형제가 변해 아름다운 신선과 선녀가 되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여기저기 뜯겨 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몰골로 너덜너덜해진 보리별 선녀가 고마운 듯 눈물을 글썽였다,

“아….”

금강별 신선이 탄식을 한 후 자신의 손에서 쏟아지는 하얀 피를 그녀에게 흩뿌려 주자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피와 섞였다. 섞인 피는 온몸으로 번져 어느새 그녀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보리별 선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고마워요.”

보리별 선녀는 눈물을 흘린 채 다시 몸을 날려 인간 세계로 끝없이 끝없이 하강했다.

금강별 신선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내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더니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이미 손바닥은 별자리만큼 구멍이 나 있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다 성기체(영혼)가 상하려면 어쩌려고.”

금강별이 돌아보니 아수라가 서 있었다. 창백해진 금강별은 아수라를 보고 그대로 쓰러지려 하자 아수라가 그를 안은 채 하늘로 솟구쳤다.

****

“쾅! 쾅!”

심장이 뛰도록 울려 대는 드럼 소리가 온 공원을 휘감기 시작했다. 곧이어 거기에 맞추어 심금을 울리는 연주가 이어졌다. 이내 그 리듬에 맞추어 청아하고 애절한 목소리가 가끔은 연주의 옥타브를 뛰어넘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로 울려 퍼졌다.

공연을 보며 흥에 겨워 몸짓을 흔들던 소녀의 시야로, 갑자기 색색이 풍선이 올챙이처럼 헤엄치듯 떠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풍선은 가로수 사이도 잘도 빠져나와 유유자적 다녔다. 소녀는 풍선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상했다. 어느 순간 풍선 속으로 한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와. 저게 뭐야.”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풍선을 따라 무대 주변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주변에는 노점상들이 쭉 있었다. 독특하게 관상을 그려 설명한 그림과 한 권의 책을 펼쳐 놓은 채 쪼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그곳을 지나자 초상화를 그리는 꾀죄죄한 화가들도 있었다.

저만치서 얼굴만큼이나 큰 뻥튀기를 먹은 채 껄렁껄렁 걷고 있는 소년과 그 옆에는 엄마인 듯한 여인이 다정히 걸어오고 있었다. 소년은 무심히 걷다 풍선을 쫓는 소녀와 부딪히고 말았다. 팔랑개비처럼 가벼운 소녀가 그만 앞으로 쏠려 넘어지고 말았다.

“쿵!”

“앗.”

“아이고, 미안해요. 학생.”

웬일로 소년의 엄마가 먼저 소녀를 보고 사과를 했지만 막상 소녀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새까만 눈동자가 두 눈에 가득한 까무잡잡한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생은 아닌 것 같고 막 중학생이 된 듯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 손 잡아.”

소녀는 소년의 새까만 눈동자에 그만 넋을 잃고 뭔가에 홀린 듯 손을 내밀어 소년의 손을 잡았다. 소년이 내민 손가락 사이에 까만 점이 있는 게 얼핏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소녀의 두 눈에는 바람에 도화꽃이 흐드러지게 핀 무릉도원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도화 나무 아래에서 고대 복장을 한 남녀가 서 있었고 남자가 바람에 휘날리는 여자의 머리를 뒤로 넘겨주고 있었다, 둘의 눈빛은 너무도 평화로워 보였다.

소년은 어디서 힘이 나는지 가뿐히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잘 보고 다녀야지.”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녀는 그제야 코 앞에 선 소년의 얼굴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소년이 소녀의 손을 놓았다.

“미안.”

소녀는 대충 대답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헛것을 보았나 생각해 보지만, 그러기에 너무 생생했다.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소년의 목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가운데 소녀의 두 눈에는 마로니에 풍경만 보일 뿐이었다,

소년은 소녀의 몸 여기저기를 보살펴 보는데 그 눈빛이 참으로 진지했다.

소년의 시선이 느껴지자 소녀가 소년을 보는데 이상하게 망부석처럼 꼼작할 수가 없었다. 그 시선이 마치 자신을 가두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녀가 마른침을 꼴깍 삼킨 후 간신히 말했다.

“난, 괜찮아.”

“다행이네.”

소년은 어느새 먼지가 묻은 소녀의 옷을 ‘탁탁’ 털어주었다. 소년의 손이 소녀의 몸에 닿는 순간이었다.

아까의 풍경이 다시 펼쳐지고 고대 복장을 한 남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그네를 탄 채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소녀가 너무 놀라 움찔하는데 소년의 얼굴이 소녀의 얼굴로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소녀는 그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순간 소년의 체취가 코끝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숨소리까지 들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웠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괜찮은데….”

“뭐가 괜찮아. 잘못했으면 크게 다칠 뻔했잖아.”

퉁명스러운 듯하지만, 소년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다정스러워 소녀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소녀는 너무 부끄러워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소녀의 볼이 점점 홍조로 변하고 있었다.

“아냐,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봐봐.”

그때였다. 어디선가 여자의 말소리가 소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정아.”

바람을 타고 소녀를 찾는 생생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소녀는 얼른 그쪽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아차 싶어 돌아보지만, 소년과 아주머니가 금세 인파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금방 본 소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지워져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 이럴 수가!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그의 새까만 눈동자만 기억날 뿐이었다. 정말 곤혹스러웠다. 왜 소년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며, 소녀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다정아.”

한층 더 높은 톤의 목소리로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소녀는 마지못해 달려가 투정 부리듯 한마디 했다. 마침 지나오는 길에 먹음직스러운 솜사탕이 널려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엄마, 나 솜사탕 사줘.”

“어디 갔었어? 엄마가 놀랐잖아.”

“솜사탕.”

“알았어. 다음부터 혼자 다니지 마.”

“엄마는. 내가 어린앤가.”

“엄마 눈에는 아직 어린애야.”

소녀는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새 눈으로 소년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솜사탕을 사 든 소녀는 주먹만 한 얼굴을 가린 채 그걸 조금씩 빨았다. 입안 가득 녹아드는 달달함이 정말 기분을 좋게 했지만 소년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은 게 정말 슬펐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 크게 입을 벌려 솜사탕을 빨았다. 달콤함이 혀끝으로 전해지면 가슴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마치 소년을 잃은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관상이 무척 좋네.”

관상쟁이의 말이 또렷하게 들려왔지만, 소녀와 소녀의 엄마는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앞으로 다가갔다. 소녀의 엄마는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딸을 쳐다보고 흡족해서 초상화가에게 물었다.

“초상화 그리는데 얼마에요?”

“단, 돈 만 원입니다. 꼬마 아가씨가 순정 만화의 여주인공처럼 정말 귀엽고 예뻐요. 방금 만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아요.”

“정말이요?”

소녀의 엄마가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소녀가 두 볼이 발그스레 해지며 꾸벅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소녀의 엄마가 으쓱해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봐. 초상화 그리자.”

소녀는 엄마가 재촉하자 쑥스러워하며 의자에 앉았지만 소년과의 일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년의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어… 그 오빠 얼굴이 어떻게 생겼지?’

손님을 빼앗긴 관상쟁이는 쩝쩝 입맛을 다시고 있었는데… 뻥튀기 때문에 얼굴의 일부밖에 볼 수 없는 소년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드님 관상이 무척 좋네요.”

관상쟁이의 말에 소년의 엄마는 멈칫 서더니 뻥튀기를 소년에게서 빼앗고 얼굴을 살피었다.

“이리 와보세요. 내가 아드님의 미래를 훤히 맞혀 볼 테니까.”

“얼마예요?”

“아드님이 관상이 하도 좋아서 단돈 오천이면 됩니다.”

“아, 생각보다 가격이 싸네.”

소년의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들의 손을 이끌고 관상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소년은 뻘쭘한 표정을 짓지만, 소년의 엄마의 두 눈에는 잔뜩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다 좋습니다. 나쁜 건 없어요. 그러나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운명의 여자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자칫 잘못 그냥 결혼하면 패가망신할 수 있어요.”

“네?”

소년의 엄마와 소년은 너무 놀라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때였다. 소년은 느낌이 이상해 우연이 옆을 보니까 아까 자신과 부딪혔던 소녀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소녀를 다시 보자 왠지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