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디어 길고 긴 비행이 끝났다.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 보이는 할머니를 배웅하며 여자는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는 내내 이를 악물고 유지해 낸 접대용 미소를 거두고 얼얼해진 얼굴근육을 쓰다듬었다. 5년간의 승무원 생활 동안 이렇게 괴로운 비행은 처음이었다. 까다로운 승객들의 요구에 지쳐서인지 평소 여간해서는 하지 않던 실수까지 저질렀던 터다. 최악의 비행으로 기억되리라. 슬쩍 엉덩이를 더듬던 능구렁이 같은 중년 남자를 생각하며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이번 비행이 끝나면 술이나 한 잔 할까,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네던 부기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까?”'“응?”'비행기를 내려가는 승객에게 함께 인사를 건네던 동료의 의아한 눈빛에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항공사의 수많은 여승무원 중에서도 둘째라면 서러울 외모를 가진 그녀였지만, 이제 슬슬 후배들의 젊음이 부러워지던 참이었다. 이 기회에 곧 기장이 될 그를 물어 집에 들어앉는 것이 갑자기 너무나 유혹적으로 느껴졌다.'“고생하셨네요.”'승객이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남자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여자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비행 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