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드르륵…… 뚜벅, 뚜벅, 드르륵…… 뚜벅, 뚜벅.'검은 슈트케이스와 대리석을 밟는 소리가 동무라도 되는 듯,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금방 닦은 것처럼 윤기가 흐르는 검정색 구두에 멋진 회색 스트라이프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지나는 길마다 주위 여자들의 눈길이 한곳으로 모였다. 남자는 여자들이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갔다.'언뜻 보면 연예인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조각처럼 생긴 남자가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검지를 이용해 여유롭게 올리자 주위에서 작은 탄성들이 울렸다. 남자는 어림잡아 187cm 정도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딱 꼬집어 블랙이라고 하기엔 갈색 빛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칼날 같은 코엔 선글라스를 착용해 눈동자 색깔은 알 수 없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하는 남자의 잘빠진 몸매도 양복에 가려져 있었다.'공항의 어느 것 하나에도 관심이 없는 듯 걷던 남자가 한곳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는 상큼한 레몬색에 파란색이 어우러진 제복을 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여자 객실 승무원(스튜어디스)이 있었다. 남자가 말을 건네기도 전에 먼저 남자를 발견한 여자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빠르게 매만지고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손님,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잠시 혼동하신 듯한데…….”'“알고 있소.”'한껏 눈웃음을 치며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내는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딱딱한 저음으로 짧게 대답했다.'“그, 그러십니까, 손님. 그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스카이 항공 본부장실이 알고 싶은데.”'“본부장실 말씀이십니까?”'“그렇소.”'“죄송하지만 본부장실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혹시 저희 승무원들에 대한 불만 사항이 있으시다면…….”'여자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자 남자의 미간 사이가 찡그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14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서 피곤에 지친 몸이었다. 황민은 계속되는 여자의 말에 짜증이 밀려왔다. 때문에 그의 입에서는 조금 전보다 더 쌀쌀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을 해야 하나?”'“네? 손님, 그게 아니라…… 저기, 그러니까, 혹시…….”'“혹시, 뭐? 이 항공사는 CA(Cabin Attendment) 교육을 이렇게 시키나? 손님이 물으면 말대꾸하고, 그것도 모자라 더듬기까지?”'“손님, 그게 아니라…… 정말 그런 게 아니라…… 흐, 흑흑.”'버럭 화를 내는 남자가 야속하고 미웠는지, 아니면 아직 신참이라 그런 손님을 당해 보지 못했는지 여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황민은 자신의 앞에서 울고 있는 여자를 보면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이 심하게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울어 대는 여자 때문에 짜증이 더 밀려왔다.'